Ver5.0 포커(Fokker) 100 — 네덜란드 항공 제조사 포커가 마지막으로 만든 제트 여객기의 탄생과 퇴장

포커(Fokker) 100 — 네덜란드 항공 제조사 포커가 마지막으로 만든 제트 여객기의 탄생과 퇴장
1. 포커라는 이름의 무게 — 100년 항공 명가의 족보
포커 100을 이해하려면 먼저 '포커'라는 이름이 항공사(史)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회사의 창업자 안토니 포커(Anthony Fokker, 1890~1939)는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 자바섬 태생의 네덜란드인으로, 20대 초반에 이미 독학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날린 항공 천재였습니다. 그는 1912년 독일에서 첫 회사를 세웠고,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군에 전투기를 공급하며 이름을 날렸습니다.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이 탔던 붉은 삼엽기 포커 Dr.I, 그리고 강력한 성능으로 유명했던 포커 D.VII가 모두 이 시기에 탄생한 기체입니다. 특히 프로펠러 회전에 맞춰 기관총 발사를 조절하는 동조 장치를 실전 전투기에 적용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전쟁이 끝나자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1919년 암스테르담에서 새 회사를 세웁니다. 이것이 이후 수십 년간 '포커'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네덜란드 항공기 제조사의 출발점입니다. 1920년대 포커의 F.VII 계열 고익 단엽 여객기는 유럽과 미국 항로를 누비며 당대 민항기 시장을 주름잡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커는 민간 여객기 전문 제조사로 다시 일어섭니다. 그 상징이 바로 다음 두 기종입니다.
| 기종 | 첫 비행 | 형식 | 의미 |
|---|---|---|---|
| F27 프렌드십 | 1955년 | 쌍발 터보프롭 | 전후 가장 성공한 터보프롭 여객기 중 하나. 미국 페어차일드 면허 생산분까지 합쳐 700대 후반 생산 |
| F28 펠로십 | 1967년 | 쌍발 터보팬 제트 | 포커 최초의 제트 여객기. 단거리·소형 공항용. 포커 100의 직계 조상 |
| 포커 50 | 1985년 | 쌍발 터보프롭 | F27의 현대화 후속기. 포커 100과 '쌍둥이 프로젝트'로 발표 |
| 포커 100 | 1986년 | 쌍발 터보팬 제트 | F28의 대형·현대화 후속기. 포커의 마지막 신규 제트 여객기 |
| 포커 70 | 1993년 | 쌍발 터보팬 제트 | 포커 100의 동체 단축형. 사실상 포커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파생형 |
즉 포커 100은 '맨땅에서 시작한 완전 신형'이라기보다, 이미 검증된 F28 플랫폼을 바탕으로 동체를 늘리고, 날개를 새로 설계하고, 엔진과 조종석을 통째로 바꾼 대대적 진화형이었습니다. 이 '검증된 뼈대 + 최신 장기(臟器)' 전략은 개발 비용을 아끼려는 중소 제조사의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2. 왜 하필 '100석'이었을까 — 1980년대 초 항공 시장의 빈틈
1980년대 초 항공업계는 큰 변화를 맞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1978년 항공 규제 완화법(Airline Deregulation Act)으로 노선·운임 자유화가 진행되었고, 항공사들은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노선망을 재편하고 있었습니다. 대형 허브 공항에서 중소 도시로 뻗어 나가는 '스포크' 노선에는 대형기는 너무 크고, 터보프롭은 너무 작고 느렸습니다.
유럽에서도 비슷했습니다. 도시 간 거리가 짧고 공항 규모가 다양해, 짧은 활주로에서도 뜨고 내리면서 제트기의 속도와 쾌적함을 주는 100석 안팎의 기체가 필요했죠. 당시 F28은 대체로 60~85석급이었고, 1960년대 기술로 만들어져 연료 효율과 소음 면에서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터보프롭(50석급)과 보잉 737·MD-80 같은 협동체 주력기(120~150석급) 사이, 바로 그 '100석의 틈새'를 정조준한 것이 포커 100이었습니다.
포커는 1983년 11월, 터보프롭 F27의 후속인 포커 50과 제트기 F28의 후속인 포커 100을 동시에 개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두 기종을 묶은 이 결정은 회사 규모에 비해 대담한 도박이었습니다. 신형기 두 개를 동시에 개발한다는 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한꺼번에 쏟아붓는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네덜란드 정부도 개발 자금 지원에 나섰는데, 이는 포커가 단순한 기업을 넘어 네덜란드 항공 산업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3. F28에서 포커 100으로 — 무엇을 바꿨나
포커 100의 기술적 변화는 '외형 확대'와 '두뇌 교체'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숫자로 먼저 비교해 봅시다.
| 항목 | F28 Mk4000 | 포커 100 |
|---|---|---|
| 전장(길이) | 약 29.6 m | 약 35.5 m |
| 날개폭 | 약 25.1 m | 약 28.1 m |
| 전고(높이) | 약 8.5 m | 약 8.5 m |
| 좌석 | 최대 약 85석 | 보통 97~109석 |
| 엔진 | 롤스로이스 스페이(Spey) | 롤스로이스 테이(Tay) 620/650 |
| 조종실 | 아날로그 계기 | EFIS 기반 글래스 콕핏 |
※ 수치는 형식·사양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으며 대표값 기준입니다.
3-1. 늘어난 동체 — 약 6m의 '플러그'
동체는 날개 앞뒤로 원통형 구간(이른바 '플러그')을 추가해 약 6m 가까이 늘렸습니다. 덕분에 좌석은 이코노미 5열(2+3) 배치 기준 100석 안팎을 확보했죠. 단면 자체는 F28과 같은 계열이라, 동체 지름이 크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이 2+3 배치는 승객 입장에서 '가운데 끼는 자리'가 한쪽에만 있다는 장점이 있어, 지금도 항공 마니아들 사이에서 쾌적한 배열로 꼽힙니다.
3-2. 새로 설계한 주익 — 효율의 핵심
포커 100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 중 하나가 날개입니다. 날개폭을 약 3m 늘리고 단면(에어포일)을 새로 다듬어 순항 효율과 이착륙 성능을 함께 끌어올렸습니다. 늘어난 무게와 탑승객을 감당하면서도 비교적 짧은 활주로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포커는 F27·F28 시절부터 소형 공항, 열악한 활주로를 상정한 설계로 유명했고, 포커 100도 이 DNA를 이어받았습니다.
3-3. 롤스로이스 테이 — 조용하고 경제적인 심장
F28이 쓰던 롤스로이스 스페이 엔진은 낮은 바이패스비의 구형 터보팬으로 시끄럽고 연료를 많이 먹었습니다. 포커 100에는 그 후속인 롤스로이스 테이(Tay)가 들어갔는데, 스페이의 코어를 바탕으로 더 큰 팬을 달아 바이패스비를 높인 엔진입니다.
바이패스비가 높다는 건 엔진 코어를 거치지 않고 바깥으로 흘러가는 공기 비율이 크다는 뜻입니다. 같은 추력을 '느리고 많은 공기'로 만들기 때문에 소음이 줄고 연료 효율이 좋아집니다. 테이 엔진은 당시 강화되던 소음 기준(ICAO Chapter 3)을 충족해, 소음 규제가 까다로운 유럽 도심 공항에서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걸프스트림 IV 비즈니스 제트에도 같은 계열 엔진이 쓰였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초기 표준형 엔진. 기본 중량 사양에 사용
추력을 높인 형식. 고중량·고온 공항 운용에 유리
3-4. 글래스 콕핏 — 두뇌의 세대교체
포커 100의 조종석은 아날로그 원형 계기 대신 CRT 화면을 쓰는 EFIS(전자 비행 계기 시스템)를 채택한 글래스 콕핏이었습니다. 비행관리시스템과 자동비행장치가 통합되어 2인 승무 체제로 운용되었고, CAT IIIb 수준의 저시정 자동착륙도 지원했습니다. 안개가 잦은 북해 연안 공항들을 생각하면 매우 실용적인 기능이었죠. 1980년대 중반 소형 제트기에 이 정도 항전 장비는 상당히 앞선 수준이었습니다.
4. 꼬리가 열리는 비행기 — 포커 패밀리의 시그니처
포커 100의 외형적 상징은 단연 꼬리 끝(테일콘)의 스피드 브레이크입니다. F28에서 물려받은 이 장치는 동체 맨 끝부분이 좌우 두 쪽으로 갈라지며 열려 공기 저항을 만드는 구조예요. 마치 악어가 입을 벌리는 것처럼 보여 처음 보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합니다.
대부분의 여객기는 날개 위의 스포일러를 세워 속도를 줄이는데, 포커 기체는 여기에 더해 꼬리 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씁니다.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엔진 출력을 크게 줄이지 않고도 속도를 억제하며 급한 강하각으로 접근할 수 있어, 산이나 장애물 많은 공항에 유리
접근 중 엔진을 어느 정도 출력 상태로 유지하므로, 복행(재상승) 시 엔진이 빠르게 추력을 낼 수 있음
날개 스포일러에만 의존하지 않아 접근 중 양력 분포를 안정적으로 유지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T자형 꼬리날개와 후방 동체 장착 엔진입니다. 엔진을 날개 밑이 아닌 동체 뒤쪽에 달면 날개가 '깨끗해져' 공기역학적으로 유리하고, 객실 소음도 앞쪽 좌석에서는 상당히 줄어듭니다. 또 기체를 낮게 설계할 수 있어 지상 장비가 부족한 소도시 공항에서도 승객 탑승이나 화물 적재가 편리했습니다. 실제로 포커 100은 기체 자체에 승객용 계단(에어스테어)을 갖춘 사양도 있어, 탑승교가 없는 공항에서 진가를 발휘했죠.
T-tail·후방 엔진 구조는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기 쉽고, 높은 받음각에서 날개 후류가 꼬리날개를 가리는 '딥 스톨' 위험을 설계 단계에서 관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이 계열 기체들은 실속 경고·방지 장치(스틱 셰이커·스틱 푸셔 등)를 정교하게 갖춥니다. 같은 구조를 쓴 DC-9·MD-80·BAC 1-11 계열 모두가 공유하는 숙제였습니다.
5. 개발과 데뷔 — 1986년 첫 비행에서 1988년 취항까지
포커, 포커 50과 포커 100의 동시 개발 계획 발표
포커 100 시제기 첫 비행. F28 개조 기반의 시험기가 하늘에 오름
네덜란드 항공 당국으로부터 형식 증명 획득
론치 커스터머 스위스항공(Swissair)에 첫 인도, 같은 해 상업 운항 시작
미국 FAA 인증 획득. 미국 대형 항공사들의 대량 주문으로 이어짐
동체 단축형 포커 70 첫 비행
포커 파산 선고
잔여 주문분 인도를 끝으로 생산 종료
론치 커스터머로 스위스항공이 선택된 것은 상징적입니다. 스위스항공은 당시 유럽에서도 깐깐하기로 유명한 항공사였고, 알프스 인근의 까다로운 공항들을 운영했습니다. 그런 항공사가 '첫 고객'이 되었다는 건 기체 성능과 신뢰성에 대한 일종의 보증서였죠.
6. 하늘을 누빈 포커 100 — 주요 운용 항공사들
포커 100은 유럽 리저널 항공사뿐 아니라 미국 대형 항공사까지 사로잡으며 한때 '잘 나가는' 기종이 됩니다. 주요 운용사를 살펴보면 이 기체가 얼마나 다양한 환경에서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지역 | 대표 운용사 | 특징 |
|---|---|---|
| 🇺🇸 미국 | 아메리칸항공, US에어 | 아메리칸항공은 70대가 넘는 포커 100을 도입해 최대 운용사 중 하나가 됨. 2000년대 초중반 퇴역 |
| 🇧🇷 브라질 | TAM | 남미 최대급 운용사로 국내선 확장의 주력기 역할 |
| 🇳🇱 네덜란드 | KLM 시티호퍼 | 모국 항공사. 포커 100·70을 함께 운용하며 오랫동안 유럽 단거리망을 담당 |
| 🇨🇭 스위스 | 스위스항공 | 론치 커스터머 |
| 🇰🇷 한국 | 대한항공 | 1990년대 국내선 등에 포커 100을 도입·운용 |
| 🇦🇺 호주 | 얼라이언스항공 등 | 중고기를 대량 확보해 광산 전세기·지역 노선에서 2020년대까지 활약 |
한국 독자에게 반가운 대목은 대한항공입니다. 대한항공은 1990년대 국내 단거리 노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포커 100을 운용했고, 이후 기단 재편 과정에서 퇴역시켰습니다. 그 시절 김포에서 지방 공항을 오가던 승객들 중에는 꼬리가 열리는 이 비행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포커 100의 '두 번째 인생'입니다. 1세대 운용사들이 2000~2010년대에 기체를 처분하자, 저렴해진 중고 포커 100을 호주 같은 곳의 항공사들이 대량 확보했습니다. 특히 호주에서는 광산 노동자를 실어 나르는 FIFO(Fly-In Fly-Out) 전세 수요가 많았는데, 비포장에 가까운 짧은 활주로에서도 운용 가능한 튼튼한 기체라는 포커의 강점이 여기서 빛을 발했습니다.
7. 동생 포커 70 — 줄여서 만든 마지막 카드
포커 100이 시장에 자리 잡자, 포커는 더 작은 시장을 겨냥해 동체를 다시 줄인 포커 70을 내놓습니다. 1993년 첫 비행한 이 기체는 약 70~80석 규모로, 포커 100과 조종석·시스템 대부분을 공유했습니다. 항공사 입장에선 조종사 자격과 정비 체계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하지만 생산 대수는 50대에 못 미쳤고, 회사의 파산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포커는 더 큰 형제인 포커 130(약 130석급) 같은 확장형도 검토했지만, 자금 사정으로 실제 개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포커 100은 '포커가 새로 설계해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제트 여객기 계열'로 남게 됩니다.
8. 잘 만든 비행기가 회사를 구하지 못한 이유
포커 100은 기술적으로 평가가 좋았고 수백 대가 팔렸습니다. 그런데 왜 포커는 1996년 문을 닫았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얽혀 있습니다.
8-1. 개발비 부담과 '싸게 팔아야 했던' 구조
포커 50과 포커 100의 동시 개발은 막대한 비용을 요구했습니다. 게다가 개발 기간이 예상보다 늘어나고 비용이 불어나면서 재무 구조가 약해졌습니다. 시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해 가격을 충분히 올려 받기 어려웠고, 기체를 많이 팔아도 남는 이익이 적었습니다. 특히 대량 주문을 따내기 위해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했던 점이 수익성을 갉아먹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8-2. 환율의 덫 — 달러로 받고 길더로 지출
항공기는 국제 시장에서 대부분 미국 달러로 거래됩니다. 반면 포커의 인건비와 생산비는 네덜란드 길더로 지출되었죠. 1990년대 중반 달러 약세가 이어지면서, 같은 가격에 팔아도 길더로 환산한 수입은 줄어들었습니다. 이 구조적 환율 리스크는 유럽의 중소 항공기 제조사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8-3. 강력한 경쟁자들의 등장
대형 제조사의 가족형 기체. 기존 737 운용사에 공통성 강점
같은 후방 엔진·T-tail 구조의 직접 경쟁자
4발 고익기. 짧은 활주로·저소음 강점
1990년대 등장한 50석급 리저널 제트. 시장 판도를 바꿈
특히 대형 제조사의 소형 파생형은 무서운 경쟁자였습니다. 보잉 737을 이미 운용하는 항공사라면, 조종사 훈련과 부품 공유를 위해 737-500을 고르는 게 합리적이었죠. 포커는 '포커 100 하나만으로' 이런 가족 단위 경쟁을 버텨야 했습니다.
8-4. DASA의 철수 — 마지막 버팀목이 빠지다
1993년 독일의 다임러-벤츠 에어로스페이스(DASA)가 포커 지분 과반을 인수하면서 재기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손실은 계속됐고, 모회사 다임러-벤츠가 비주력 사업 정리에 나서면서 1996년 1월 추가 지원 중단을 결정합니다. 네덜란드 정부도 단독으로 구제하기 어려웠고, 결국 1996년 3월 15일 포커는 파산을 선고받습니다. 1919년 이후 77년, 독일 시절까지 치면 80년이 넘는 역사의 막이 내린 순간이었죠.
높은 개발비 + 낮은 판매 마진 + 달러 약세 + 대형사 파생형과의 경쟁 + 모회사 지원 중단 = 기술은 남고 회사는 사라짐
9. 생산 종료 이후 — 재가동의 꿈과 남은 유산
파산 이후에도 이미 주문받은 기체들은 1997년까지 순차적으로 완성되어 인도되었습니다. 포커 100은 최종적으로 약 280대가 생산되었고, 포커 70까지 합치면 이 계열은 300대를 넘깁니다.
파산 직후 네덜란드에서는 생산 라인을 되살리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포커(Fokker)'를 거꾸로 쓴 이름의 로코프(Rekkof) 프로젝트입니다. 포커 70·100의 개량형을 다시 생산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투자 유치와 시장 환경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름부터 '되감기'를 꿈꾼 이 프로젝트는 포커라는 브랜드에 대한 네덜란드의 애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남아 있습니다.
항공기 제조는 멈췄지만 포커의 기술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비·부품·구조물 사업을 이어간 조직들은 포커 테크놀로지스(Fokker Technologies) 등의 이름으로 활동했고, 이후 영국의 GKN에 인수되어 항공 구조물·배선 분야에서 명맥을 이었습니다. 또한 기존 포커 기체를 지원하는 서비스 사업도 유지되어, 전 세계에 남은 포커 100들이 계속 날 수 있었습니다.
포커의 파산은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완제 여객기를 설계·생산하던 중소 제조사 시대의 끝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이후 대형 여객기는 에어버스와 보잉, 리저널 제트는 엠브라에르와 봄바디어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10. 사고와 교훈 — 안전의 역사에서 바라본 포커 100
오래 운용된 기종이 그렇듯 포커 100에도 뼈아픈 사고 기록이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96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발생한 TAM 항공 402편 사고입니다. 이륙 직후 한쪽 엔진의 역추진 장치가 비정상적으로 전개되면서 기체가 제어력을 잃고 시가지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과 지상 인원 등 99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 사고는 역추진 장치의 비의도적 전개를 막는 설계와 승무원 대응 절차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고, 관련 시스템의 개선과 점검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항공 안전은 이렇게 사고의 교훈을 설계와 절차에 녹여 넣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포커 100의 전체 운항 이력은 수십 년에 걸친 것이며, 이후 운용사들은 개선된 정비 지침을 따라 기체를 운항했습니다.
11. 승객과 조종사가 기억하는 포커 100
스펙표만으로는 알 수 없는 '체감'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2+3 좌석 배치로 '가운데 좌석'이 한쪽뿐. 앞쪽 좌석은 엔진이 뒤에 있어 조용한 편. 반면 맨 뒷좌석은 엔진 소리가 또렷하게 들림
튼튼하고 조작감이 정직한 기체라는 평. 꼬리 에어브레이크 덕에 가파른 접근도 비교적 수월
낮은 기체 높이로 지상 작업 접근성이 좋음. 다만 생산 종료 후 부품 수급은 점점 과제가 됨
항공 마니아들 사이에서 포커 100은 '날씬하고 우아한 실루엣'으로 사랑받습니다. 길쭉한 동체, 날렵한 T자 꼬리, 그리고 착륙할 때 활짝 열리는 꼬리 브레이크는 사진가들이 놓칠 수 없는 장면이죠. 요즘은 이런 항공기 일러스트나 3D 모델링, 항공 사진 보정 같은 작업을 재능넷 같은 재능 거래 플랫폼에서 의뢰하는 마니아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라져 가는 기종을 기록하려는 마음이 창작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12. 포커 100을 통해 본 '리저널 제트'의 진화
포커 100은 오늘날 '리저널 제트'라 부르는 기체 카테고리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00석 안팎의 기체를 짧은 노선, 중소 공항에 투입하는 모델은 이후 다음과 같이 진화합니다.
F28, BAC 1-11, DC-9 초기형 등 소형 제트의 등장
포커 100·BAe 146·737-500 등 100석급 경쟁. 글래스 콕핏·저소음 엔진 확산
CRJ·ERJ 등 50석급 리저널 제트 대유행
엠브라에르 E-제트, 에어버스 A220(구 봄바디어 C시리즈) 등 100석급 신세대 등장
흥미롭게도 오늘날 시장을 장악한 엠브라에르 E190, 에어버스 A220 같은 100석급 기체들은 포커 100이 개척하던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포커 100이 많은 지역 노선에서 퇴역할 때 그 후임으로 E-제트나 A220이 들어간 사례가 많다는 것도 상징적이죠. 포커는 사라졌지만, '100석 제트로 지역을 잇는다'는 아이디어는 정답이었던 셈입니다.
13. 핵심 제원 한눈에 보기
| 항목 | 포커 100 (대표값) |
|---|---|
| 승무원 | 조종사 2명 |
| 좌석 | 약 97~109석 (일반적으로 100석 안팎) |
| 전장 | 약 35.5 m |
| 날개폭 | 약 28.1 m |
| 전고 | 약 8.5 m |
| 엔진 | 롤스로이스 테이 620 또는 650 터보팬 2기 |
| 최대이륙중량 | 약 43~46톤 (사양에 따라 상이) |
| 순항 속도 | 약 마하 0.72~0.77 |
| 항속거리 | 약 2,500~3,100 km (사양에 따라 상이) |
| 생산 기간 | 1986~1997년 |
| 생산 대수 | 약 280대 |
※ 중량·항속은 표준형과 고중량형, 엔진 형식, 탑재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범위로 표기했습니다.
✈️ 정리하면
포커 100은 F28을 바탕으로 동체를 늘리고 날개·엔진·조종석을 새로 바꾼 100석급 제트 여객기입니다.
롤스로이스 테이 엔진으로 조용하고 경제적이었으며, 글래스 콕핏과 저시정 자동착륙을 갖춘 앞선 기체였습니다.
꼬리가 열리는 테일콘 스피드 브레이크는 포커 가문의 상징이었고, 짧은 활주로와 열악한 공항에서 강했습니다.
그러나 개발비 부담, 낮은 마진, 달러 약세, 대형 제조사와의 경쟁 속에 포커는 1996년 파산했고, 포커 100은 이 명가의 마지막 제트 여객기 계열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100석 리저널 제트'라는 시대의 출발점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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