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5.0 블록체인 기반 가상토지의 소유구조 설계: 토큰 표준, 권리 분할, 공간 규칙과 거버넌스

블록체인 기반 가상토지의 소유구조 설계: 토큰 표준, 권리 분할, 공간 규칙과 거버넌스
🏗️ 건축가가 도면을 그리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디자인 감각도, 자재 단가도 아닌 바로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이고, 무엇을 지을 수 있는가”입니다.
지적도, 등기부, 용도지역, 건폐율과 용적률. 현실의 건축은 이 보이지 않는 ‘소유와 규칙의 구조물’ 위에 세워집니다.
그렇다면 물리 법칙도, 국토교통부도 없는 가상 세계에서는 어떨까요? 놀랍게도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지적도를 설계하고, 등기 시스템을 만들고, 건축 규제를 코드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디지털 지적 공학’의 설계도를 한 장씩 펼쳐 보는 여정입니다.
1. 왜 ‘가상토지’에 소유구조 설계가 필요한가
가상 세계의 공간은 원리적으로 무한합니다. 서버에 좌표를 하나 더 추가하면 땅이 하나 더 생기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프로젝트들은 하나같이 땅의 총량을 고정해 둡니다. Decentraland는 90,601개의 필지(LAND), The Sandbox는 166,464개의 LAND라는 상한을 처음부터 정해 놓았습니다. 무한히 만들 수 있는 것을 굳이 유한하게 만드는 이 역설이 가상토지 소유구조 설계의 출발점입니다.
희소성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블록체인이 기록하는 것은 ‘땅’ 그 자체가 아닙니다. 블록체인은 “어떤 식별자(token ID)를 어떤 주소(address)가 보유하고 있다”는 장부만 기록합니다. 3D 지형, 건물, 텍스처, 음악은 대부분 블록체인 밖의 저장소에 있고, 그것을 실제로 렌더링하는 것은 각 플랫폼의 클라이언트와 서버입니다. 그래서 가상토지의 소유구조 설계란 결국 다음 질문들에 답하는 작업입니다.
📐 설계자가 답해야 할 다섯 가지 질문
1. 땅을 어떤 단위로 쪼개고, 그 조각에 어떻게 이름(식별자)을 붙일 것인가?
2. 소유권을 어떤 토큰 표준으로 표현할 것인가?
3. 소유자, 건축 담당자, 임차인처럼 서로 다른 권리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4. 이웃 필지와의 결합, 건물 높이, 콘텐츠 용량 같은 ‘공간 규칙’을 어디서 강제할 것인가?
5. 이 모든 규칙을 누가, 어떤 절차로 바꿀 수 있는가?
이 다섯 질문은 놀랍도록 현실의 부동산 제도와 닮아 있습니다. 1번은 지적 측량, 2번은 등기 제도, 3번은 소유권과 임차권·지상권의 분리, 4번은 건축법과 국토계획법, 5번은 입법과 행정 절차에 대응합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단순한 블록체인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실험건축이 다루는 ‘제도의 건축’이기도 합니다.
2. 현실의 소유구조를 먼저 해부해 보자
가상토지를 설계하기 전에 현실 부동산이 소유권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블록체인 메타버스의 많은 설계 결정은 현실 제도를 의식적으로 모방하거나, 혹은 의식적으로 거부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2-1. 지적(地籍)과 등기: 두 개의 장부
한국을 예로 들면 토지에는 크게 두 종류의 공적 장부가 있습니다. 하나는 땅의 위치·지번·지목·면적·경계를 기록하는 지적공부(토지대장, 지적도 등)이고, 다른 하나는 그 땅에 대한 권리관계를 기록하는 등기부입니다. 즉 “어디에 얼마만큼의 땅이 있는가”와 “그 땅을 누가 어떤 권리로 가지는가”가 분리되어 관리됩니다.
블록체인 가상토지도 사실상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좌표 체계와 필지 크기를 정의하는 부분은 지적공부의 역할을, 토큰 소유자를 기록하는 컨트랙트 상태는 등기부의 역할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현실에서는 두 장부를 국가가 관리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둘 다 공개된 코드와 분산 원장이 관리한다는 점입니다.
2-2. 권리의 다발(Bundle of Rights)
법학과 부동산학에서는 소유권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권리의 다발’로 설명하곤 합니다. 땅을 점유하고 사용할 권리, 수익을 얻을 권리, 처분할 권리, 타인을 배제할 권리 등이 한데 묶여 있고, 이 다발 중 일부를 떼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임대차는 사용권을, 지상권은 건물을 소유하기 위해 남의 땅을 사용할 권리를, 저당권은 담보 가치를 떼어 주는 셈이죠.
가상토지 소유구조 설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초기 NFT 토지는 “토큰을 가진 사람이 전부를 갖는다”는 단순한 모델로 시작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건축 대행, 임대, 공동 투자, 담보 대출 같은 수요가 생기면서 이 다발을 코드 수준에서 분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 권리 요소 | 현실 부동산 | 블록체인 가상토지에서의 대응 |
|---|---|---|
| 처분권 | 매매, 증여 | 토큰 전송(transfer), 마켓 거래 |
| 사용·개발권 | 건축 허가, 지상권 | 운영자(operator)·편집 권한, 씬(scene) 배포 권한 |
| 임차권 | 임대차 계약 | 기한부 이용자(user) 역할, 렌탈 컨트랙트 |
| 수익권 | 임대료, 운영 수익 | 입장료·판매 수익 분배 컨트랙트, 로열티 |
| 공유 지분 | 공유·구분소유 | 분할 소유(fractionalization) 토큰 |
| 담보권 | 저당권, 근저당 | NFT 담보 대출 프로토콜의 에스크로 |
2-3. 공법적 규제: 건축법이 없는 세계의 건축법
현실의 땅 주인은 소유자라도 마음대로 짓지 못합니다. 용도지역, 건폐율, 용적률, 높이 제한, 일조권 사선 제한이 있죠. 가상 세계에는 일조권 소송도, 구청 건축과도 없지만 비슷한 제약이 존재합니다. 다만 그 이유가 다릅니다. 현실 규제가 안전·위생·공공성을 위한 것이라면, 가상 공간의 규제는 주로 렌더링 성능, 서버 부하, 사용자 경험, 이웃 간 시각적 간섭 방지를 위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Decentraland의 씬 제한 사례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3. 지적 설계: 땅을 어떻게 쪼개고 이름 붙일까
3-1. 격자형 필지 모델
블록체인 메타버스의 대표 주자들은 대부분 정사각형 격자를 채택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하고 실용적입니다. 정사각형 격자는 좌표 두 개(x, y)로 위치를 완전히 표현할 수 있고, 인접 여부 판정이 쉬우며, 결합(합필)과 분할의 규칙을 깔끔하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좌표는 대략 x, y 각각 -150부터 150까지의 범위로 구성되어 301 × 301 = 90,601개의 필지가 됩니다. 필지마다 좌표 쌍이 곧 주소입니다. 일부 구역은 도로, 광장, 테마 지구 등으로 지정되어 개인이 아닌 커뮤니티 단위로 관리됩니다.
지도는 408 × 408 격자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의 LAND는 게임 내에서 96 × 96 단위 크기의 공간으로 설명됩니다. 여러 LAND를 묶은 ESTATE는 3×3, 6×6, 12×12, 24×24 같은 정해진 크기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격자 모델의 핵심 설계 변수는 필지 크기입니다. 너무 작으면 의미 있는 건축물을 짓기 어렵고, 너무 크면 소유자 수가 적어져 도시가 듬성듬성해집니다. 또한 필지 크기는 곧 ‘한 사람이 책임지는 콘텐츠 단위’이기 때문에 렌더링 예산과도 직결됩니다. Decentraland의 16m 필지는 작은 갤러리나 상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규모이고, 큰 프로젝트는 여러 필지를 묶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3-2. 좌표를 토큰 ID로 바꾸는 방법
ERC-721 같은 NFT 표준에서 각 토큰은 256비트 정수 하나(uint256)로 식별됩니다. 그런데 땅의 주소는 (x, y) 두 개의 숫자입니다. 이 두 개를 하나의 정수로 어떻게 압축할까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비트 연결(bit packing)입니다. 256비트를 반으로 나누어 상위 128비트에 x를, 하위 128비트에 y를 넣는 방식이죠. Decentraland의 LAND 레지스트리 컨트랙트도 좌표를 이렇게 인코딩·디코딩하는 함수를 두고 있습니다.
이 방식을 단순화한 예시 코드는 다음과 같습니다(설명용이며 실제 배포 코드와는 다릅니다).
// 설명용 단순화 예시
function encodeTokenId(int256 x, int256 y) public pure returns (uint256) {
require(-1000000 < x && x < 1000000 && -1000000 < y && y < 1000000, "out of range");
// x를 상위 128비트, y를 하위 128비트에 배치
return (uint256(x) << 128) | (uint256(y) & type(uint128).max);
}
function decodeTokenId(uint256 id) public pure returns (int256 x, int256 y) {
x = int256(int128(uint128(id >> 128)));
y = int256(int128(uint128(id & type(uint128).max)));
}
이 인코딩 방식의 장점은 토큰 ID만 보고도 위치를 즉시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별도의 매핑 테이블을 조회할 필요가 없으니 가스비가 절약되고, 외부 도구(지도 뷰어, 마켓플레이스)도 ID에서 위치를 직접 계산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단점도 있습니다. 지도의 모양이 격자에 고정되며, 나중에 육각형이나 불규칙 필지로 바꾸려면 식별 체계 자체를 갈아엎어야 합니다. 지적 체계는 한번 정하면 바꾸기 어렵다는 현실의 교훈이 가상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3-3. 순번형 식별자와 별도 좌표 매핑
모든 프로젝트가 좌표 인코딩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토큰 ID를 1, 2, 3… 순번으로 붙이고, 그 토큰이 가리키는 위치·지형·자원 정보를 메타데이터에 담는 방식도 있습니다. Yuga Labs의 Otherside 토지 NFT인 Otherdeed가 대표적인데, 각 토지는 환경(sediment), 자원, 희귀 생물 같은 속성을 메타데이터로 가집니다. 이 방식은 지도 설계를 나중에 유연하게 할 수 있지만, “토지의 위치와 성질이 어디에 확정적으로 기록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메타데이터 저장소의 신뢰성 문제를 남깁니다.
3-4. 현실 주소 연동형 모델
Upland처럼 현실 세계의 지도와 주소를 기반으로 가상 부동산을 발행하는 모델도 있습니다. 실제 도시의 지번이나 건물 위치에 대응하는 디지털 부동산을 판매하는 방식인데, 이 경우 지적 설계의 상당 부분을 현실 지도에 위임하는 셈입니다. 직관적이고 친숙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 소유자와의 관계나 실제 공간의 상표·초상 문제 같은 법적 경계를 고민해야 합니다. 참고로 Earth 2처럼 현실 지구를 격자로 나누어 파는 서비스 중에는 블록체인이 아닌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가상토지 = 블록체인’이라는 등식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 설계 포인트
격자 좌표 인코딩은 위치의 확정성과 효율성을, 순번형+메타데이터는 세계관 확장의 유연성을, 현실 주소 연동형은 사용자 직관성을 우선시합니다.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며, 플랫폼이 무엇을 ‘절대 바뀌지 않는 약속’으로 삼을지에 따라 선택이 갈립니다.
4. 등기 설계: 토큰 표준이라는 디지털 등기부
4-1. ERC-721: 대체 불가능한 한 필지
가상토지 대부분은 이더리움의 ERC-721 표준을 기반으로 합니다. ERC-721은 각 토큰이 고유한 ID를 가지며 서로 대체할 수 없다는 성질을 정의합니다. 핵심 기능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 함수·이벤트 | 역할 | 부동산 비유 |
|---|---|---|
| ownerOf(tokenId) | 해당 토큰의 현재 소유 주소 조회 | 등기부 소유자란 열람 |
| balanceOf(owner) | 특정 주소가 보유한 토큰 수 | 소유 부동산 목록 건수 |
| transferFrom / safeTransferFrom | 소유권 이전 | 소유권 이전 등기 |
| approve / setApprovalForAll | 제3자에게 이전 권한 위임 | 매도 위임장 |
| Transfer 이벤트 | 이전 내역 기록 | 등기부 갑구의 이전 이력 |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블록체인 등기부는 ‘열람’이 누구에게나 무료이고, 이력이 전부 공개되며, 이전 등기가 거래와 동시에 확정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매매 계약, 잔금 지급, 이전 등기 신청이 시차를 두고 일어나고 그 사이에 사고 위험이 존재하지만,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 마켓에서는 대금 지급과 토큰 이전이 하나의 트랜잭션 안에서 원자적으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4-2. ERC-1155와 반(半)대체성
ERC-1155는 하나의 컨트랙트에서 대체 가능 토큰과 대체 불가능 토큰을 함께 다룰 수 있는 멀티 토큰 표준입니다. 토지 자체는 보통 ERC-721로 두더라도, 토지 위에 놓이는 아이템, 건축 자재, 장식물처럼 같은 종류가 여러 개 존재하는 자산은 ERC-1155가 효율적입니다. 한 번의 트랜잭션으로 여러 종류를 일괄 전송할 수 있어 가스비 측면에서도 유리하죠. 즉 땅은 721, 땅 위의 동산은 1155라는 역할 분담이 자주 나타납니다.
4-3. 합필(合筆) 설계: Estate라는 묶음 토큰
현실에서도 여러 필지를 하나로 합치는 합필 절차가 있듯, 가상토지에도 여러 필지를 묶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Decentraland는 인접한 LAND를 묶어 Estate라는 별도의 NFT로 관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LAND 토큰들이 Estate 컨트랙트로 이전되어 보관되고, 소유자는 대신 그 묶음을 대표하는 Estate 토큰 하나를 갖게 됩니다. 일종의 ‘토큰을 담는 토큰’인 셈입니다.
합필 설계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묶으려는 필지들이 실제로 맞닿아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온체인에서 모든 인접 관계를 그래프 탐색으로 검증하면 가스비가 크게 늘기 때문에, 검증을 어디까지 체인에서 할지와 오프체인 도구에 맡길지를 설계 단계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필지 단위로 지정해 두었던 운영자 권한이 묶음으로 들어갔을 때 어떻게 처리될지 규칙이 필요합니다. 묶음 단위 권한이 개별 권한보다 우선하는지, 충돌하면 어떻게 되는지 명확해야 합니다.
Estate에서 필지를 다시 빼낼 수 있어야 유동성이 생깁니다. 하지만 중간 필지를 빼내면 남은 묶음이 끊어질 수 있으므로, 분할 후의 연결성을 어떻게 다룰지도 정책 사안입니다.
묶음 전체에 하나의 건축물(씬)을 배포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Estate 구조는 블록체인 등기와 콘텐츠 배포 시스템이 함께 이해하는 형태여야 합니다.
The Sandbox는 다른 접근을 보여 줍니다. 처음부터 3×3, 6×6, 12×12, 24×24처럼 정해진 크기의 ESTATE 단위로 판매한 경우가 있었고, 이는 합필의 자유도를 줄이는 대신 규칙의 단순성을 얻는 선택입니다. 현실의 대규모 택지 개발에서 블록 단위로 분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4-4. 토큰이 지갑을 갖는다면: ERC-6551
최근 등장한 ERC-6551(토큰 바운드 계정)은 NFT 하나하나에 스마트 컨트랙트 계정을 붙여, NFT 자체가 다른 자산을 보유할 수 있게 하는 표준입니다. 가상토지에 이를 적용하면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집니다. 땅 토큰의 계정 안에 그 땅 위의 건물 아이템, 장식품, 그 땅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함께 들어 있고, 땅을 팔면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넘어갑니다. 현실의 ‘토지와 그 정착물은 함께 이전된다’는 원칙을 코드로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표준을 실제로 채택한 가상토지 플랫폼의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므로, 설계 가능성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5. 권리 분할 설계: 소유자·운영자·이용자의 3층 구조
초기 가상토지에서 가장 먼저 부딪힌 현실적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땅 주인이 직접 3D 건축을 할 줄 모르면 어떡하지?” 땅을 산 사람이 개발자나 3D 디자이너일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건축 작업을 맡기기 위해 토큰 자체를 넘겨줄 수도 없습니다. 토큰을 넘기면 소유권까지 넘어가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유권과 사용권을 분리하는 구조가 등장했습니다.
5-1. 운영자(Operator) 권한
Decentraland의 LAND 컨트랙트에는 일반 ERC-721의 승인(approve) 기능과 별도로, 필지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업데이트 운영자(update operator) 개념이 있습니다. 소유자는 특정 주소를 운영자로 지정해, 그 주소가 해당 필지에 씬을 배포하거나 수정할 수 있게 하되 토큰 자체를 팔거나 옮기지는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서 땅 주인이 시공사에 공사를 맡기면서도 땅을 넘기지 않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이 분리가 왜 중요할까요? 메타버스 공간 제작은 3D 모델링, 인터랙션 스크립트, 최적화까지 포함하는 전문 작업입니다. 실제로 재능넷 같은 재능 거래 플랫폼에서도 3D 모델링, 게임 엔진 작업,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 같은 재능이 활발하게 거래되는데, 가상토지 소유자가 이런 전문가에게 작업을 맡길 때 ‘소유권은 지키고 작업 권한만 빌려주는’ 구조가 있어야 안심하고 협업할 수 있습니다. 운영자 권한은 바로 이 협업의 안전장치입니다.
5-2. 기한부 이용권: ERC-4907
임대는 현실 부동산에서 가장 흔한 권리 분할 형태입니다. NFT 생태계에서는 이를 위해 ERC-4907이라는 확장 표준이 제안되어 채택되었습니다. 핵심은 소유자(owner)와 별도로 이용자(user) 역할과 만료 시각(expires)을 두는 것입니다.
// ERC-4907 인터페이스 핵심 (요약)
interface IERC4907 {
event UpdateUser(uint256 indexed tokenId, address indexed user, uint64 expires);
function setUser(uint256 tokenId, address user, uint64 expires) external;
function userOf(uint256 tokenId) external view returns (address);
function userExpires(uint256 tokenId) external view returns (uint256);
}
이 구조의 영리한 점은 만료 시각이 지나면 별도의 회수 트랜잭션 없이 userOf가 자동으로 ‘이용자 없음’을 반환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임대차 종료 후 명도 분쟁 같은 일이 원리적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용권이 실제로 어떤 기능(씬 배포, 이벤트 개최 등)과 연결되는지는 각 플랫폼이 이 값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Decentraland는 2022년에 LAND 렌탈 기능을 도입해, 소유자가 토지를 일정 기간 빌려주고 임차인이 그 기간 동안 콘텐츠 배포 권한을 갖는 구조를 마련했습니다. 렌탈 컨트랙트가 토지를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방식이라 소유자 입장에서는 ‘에스크로 계약’에 가깝고, 임차인 입장에서는 ‘기간 한정 운영자 권한’을 얻는 것에 가깝습니다.
5-3. 위임의 위험: 권한 설계가 곧 보안 설계
⚠️ setApprovalForAll의 함정
NFT 생태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사고 유형 중 하나는 악성 사이트에서 사용자가 setApprovalForAll(전체 토큰 이전 권한 위임)에 서명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이 서명 하나로 공격자는 해당 컬렉션의 모든 토큰을 옮길 수 있게 됩니다. 가상토지는 개당 가치가 높은 경우가 많아 피해 규모도 커집니다.
그래서 좋은 소유구조 설계는 “이전 권한”과 “작업 권한”을 반드시 분리하고, 작업 권한을 아무리 넓게 줘도 소유권 이전은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방향을 취합니다. 운영자 권한과 이용자 권한이 별도 함수로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4. 수익권의 분리
가상토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입장권 판매, 웨어러블·아이템 판매, 광고, 이벤트 후원 등 다양합니다. 이 수익을 소유자와 운영자, 혹은 여러 투자자에게 어떻게 나눌지는 별도의 수익 분배 컨트랙트(splitter)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지 소유자 60%, 공간을 만든 크리에이터 30%, 커뮤니티 금고 10%처럼 비율을 코드에 고정해 두면, 수익이 들어올 때마다 자동으로 분배됩니다. 현실의 관리 계약서가 해야 할 일을 컨트랙트가 대신하는 셈입니다.
또한 2차 거래 시 원작자에게 수익을 주는 ERC-2981(NFT 로열티 표준)도 있습니다. 다만 ERC-2981은 ‘로열티 정보를 조회하는 방법’을 표준화할 뿐, 마켓플레이스가 반드시 로열티를 지급하도록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실제로 2022~2023년 무렵 여러 마켓플레이스가 로열티를 선택 사항으로 바꾸면서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가상토지 설계자가 개발 기여자에게 장기적 보상을 주고 싶다면, 로열티 표준만 믿기보다는 거래 경로를 제한하거나 별도의 보상 구조를 두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6. 공유와 분할: 한 필지를 여러 사람이 갖는 방법
6-1. 분할 소유(Fractionalization)의 원리
인기 지역의 가상토지는 한 필지 가격이 상당히 높을 수 있습니다. 이를 여러 사람이 나눠 갖기 위한 방법이 분할 소유입니다.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Fractional.art(이후 Tessera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서비스를 종료)처럼 이 구조를 범용 서비스로 제공한 프로젝트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례는 기술적으로는 분할 소유가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동시에 지분 보유자 간의 의사결정, 재결합 조건, 서비스 지속성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도 드러냈습니다.
6-2. 분할 소유의 거버넌스 난제
현실의 공유 부동산에서도 공유자 간 갈등은 흔한 분쟁 원인입니다. 가상토지 분할 소유에서도 같은 질문이 생깁니다.
6-3. DAO 공동 소유
또 다른 방식은 토지를 DAO(탈중앙 자율 조직)의 금고가 직접 보유하고, 구성원이 투표로 사용 방식을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다중서명 지갑(multisig)이 토지를 보유하고, 운영자 지정이나 매각 같은 중요한 결정은 서명자 다수의 승인을 요구하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현실로 치면 조합이 소유한 공동 건물과 비슷합니다. Decentraland에서도 일부 테마 구역은 커뮤니티 단위로 관리되어 왔는데, 개인 소유 필지들과 공동 관리 구역이 섞여 있는 모습은 현실 도시의 사유지와 공공 공간의 관계를 닮았습니다.
7. 공간 규칙 설계: 코드로 쓰는 건축법
이제 건축가들이 가장 흥미로워할 부분입니다. 가상 공간에도 ‘지을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는 법조문이 아닌 코드와 SDK(개발 도구)의 제약으로 표현됩니다.
7-1. 높이 제한과 용량 제한
Decentraland의 씬(scene)은 필지 수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한도가 정해집니다. 대표적으로 높이 제한은 필지 수 n에 대해 log₂(n+1) × 20m 공식으로 계산되는 방식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공식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공식은 건축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필지를 1개에서 31개로 31배 늘려도 높이는 5배만 늘어납니다. 로그 함수는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무한정 높이 쌓는 것을 억제”합니다. 만약 높이가 필지 수에 정비례했다면 대형 소유자가 초고층 탑을 세워 주변 수십 필지의 시야를 가려 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현실의 일조권 사선 제한이나 고도 지구 규제가 하는 일을, 수학 함수 하나가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높이 외에도 씬에는 삼각형(폴리곤) 수, 엔티티 수, 머티리얼·텍스처 수, 파일 용량 등 렌더링 부하와 관련된 한도가 필지 수에 비례해 주어집니다(구체적 수치는 SDK 버전에 따라 바뀌어 왔으므로 최신 공식 문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것은 현실의 용적률과 같은 개념입니다. 땅의 면적에 비례해 지을 수 있는 ‘양’이 정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경계를 넘어 이웃 필지로 모델이 삐져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대지 경계선 침범 금지가 가상 세계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7-2. 규칙은 어디에서 강제되는가: 온체인 vs 오프체인
여기서 설계자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구조적 사실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공간 규칙은 대부분 블록체인 위에서 강제되지 않습니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소유권과 권한을 기록할 뿐, “이 3D 모델의 폴리곤이 몇 개인가”를 검사하지 않습니다. 실제 검사는 콘텐츠 배포 서버, 클라이언트, SDK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 레이어 | 주로 담당하는 것 | 신뢰 근거 |
|---|---|---|
| 온체인(스마트 컨트랙트) | 소유권, 운영자·이용자 권한, 합필, 이전 기록 | 분산 원장의 합의, 공개된 코드 |
| 콘텐츠 저장층 | 씬 파일, 3D 모델, 텍스처, 스크립트 | 콘텐츠 해시, 분산 저장 또는 운영 노드 |
| 콘텐츠 검증·배포 서버 | 배포자 권한 확인, 용량·경계 규칙 검사 | 운영 주체나 노드 네트워크의 정책 |
| 클라이언트(브라우저·앱) | 렌더링, 상호작용, 경계 밖 콘텐츠 차단 | 클라이언트 구현 |
Decentraland는 콘텐츠 서버들이 배포 요청을 받으면, 배포자가 해당 필지의 소유자나 운영자인지 블록체인 상태를 조회해 확인하는 구조를 사용합니다. 즉 “누가 배포할 수 있는가”는 체인이 답하고, “무엇을 배포할 수 있는가”는 서버와 SDK가 답하는 이중 구조입니다. 이 경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블록체인에 땅이 있으니 영원하다”는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7-3. 콘텐츠 해시: 건축물의 지문
콘텐츠를 오프체인에 둘 때 위변조를 막는 핵심 도구는 콘텐츠 주소 지정(content addressing)입니다. IPFS처럼 파일 내용의 해시값을 주소로 쓰면, 파일이 한 바이트만 바뀌어도 주소가 달라집니다. 필지의 콘텐츠 포인터(해시)를 기록해 두면 “이 땅 위에 공식적으로 올라간 건물이 정확히 이것”이라는 검증이 가능해집니다. 다만 해시는 ‘무엇이 맞는 파일인지’를 증명할 뿐, ‘그 파일이 계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음’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저장 노드가 파일을 고정(pinning)해 두지 않으면 지문만 남고 건물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7-4. 공공 공간과 도로 설계
도시가 사유지로만 채워지면 이동이 불가능해집니다. Decentraland 초기 지도에는 도로(road)와 광장(plaza), 그리고 커뮤니티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지구(district)가 설정되었습니다. 이런 구역은 개인에게 판매되지 않거나 특별한 관리 주체에 귀속됩니다. 이는 현실 도시계획의 기반시설 부지와 같은 개념입니다. 가상 세계에서는 순간이동이 가능하니 도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용자가 걸어서 탐험하며 이웃 공간을 발견하는 경험은 도시성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유구조 설계자는 ‘무엇을 팔지 않을 것인가’도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8. 최초 분배 설계: 땅을 처음 누구에게 줄 것인가
현실의 땅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토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깁니다. 그렇다면 그 첫 소유자는 어떻게 정해야 공정할까요? 이것은 기술 문제라기보다 사회 설계의 문제입니다.
8-1. 경매 방식
Decentraland는 2017년 말 ‘Terraform Event’라는 초기 토지 경매를 진행했는데, 이때 토지 대금으로 지불된 MANA 토큰은 소각되는 구조였습니다. 판매 대금을 운영사가 가져가는 대신 토큰 공급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토지 분배와 토큰 경제를 연결한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매는 가격 발견에는 효율적이지만, 자금력이 큰 참여자가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쉽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8-2. 고정가 판매와 단계별 판매
The Sandbox는 여러 차례에 걸친 단계별 판매로 LAND를 공급했습니다. 일정 시점에 정해진 물량만 풀면 초기 투기를 어느 정도 분산하고, 플랫폼 개발 진척에 맞춰 공급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대신 판매 회차마다 대기 수요가 몰려 경쟁이 과열되는 현상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8-3. 대규모 동시 민팅의 교훈: 가스 전쟁
2022년 4월 30일, Yuga Labs의 Otherdeed 판매는 블록체인 토지 분배 설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총 20만 개 중 약 10만 개를 판매하는 과정에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가스비가 폭등했고, 많은 참여자가 민팅에 실패하고도 높은 가스비만 지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분배 방식 자체가 기반 네트워크에 부하를 주고 사용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고, 이후 Yuga Labs가 자체 체인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분배 방식별 장단점 정리
| 방식 | 장점 | 단점 |
|---|---|---|
| 경매 | 시장 가격 발견, 수익 극대화 | 자본 집중, 초기 진입 장벽 |
| 고정가 선착순 |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움 | 가스 경쟁, 봇 선점 |
| 추첨(래플) | 기회 균등, 네트워크 부하 감소 | 위치 선택권 제한, 추첨 공정성 검증 필요 |
| 기여 기반 배정 | 실제 크리에이터·커뮤니티에 분배 | 기여 평가 기준의 주관성 |
추첨 방식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Chainlink VRF 같은 검증 가능한 난수 생성기를 쓰는 등의 설계가 함께 필요합니다.
8-4. 위치 프리미엄과 ‘유명인 이웃 효과’
최초 분배 이후 시장에서는 위치에 따른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2021년 무렵에는 이른바 ‘메타버스 붐’ 속에서 고액 거래가 연이어 보도되었는데, 예를 들어 Republic Realm이 The Sandbox의 토지를 약 430만 달러에 매입했다는 소식, Tokens.com 계열이 Decentraland의 패션 지구 토지를 약 240만 달러 상당에 매입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The Sandbox에서 래퍼 스눕 독의 가상 저택 옆 필지가 약 45만 달러에 거래되었다는 보도는 “이웃이 누구냐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현실 부동산의 논리가 가상 세계에서도 작동한다는 상징적 사례로 회자되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 이후 암호화폐 시장 전반의 하락과 함께 가상토지 거래량과 가격도 크게 줄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소유구조 설계자에게 이 흐름이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희소성만으로는 가치가 유지되지 않으며, 실제로 사람이 머무는 이유(콘텐츠, 이벤트, 커뮤니티)가 소유구조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빈 필지만 가득한 도시는 아무리 등기가 정확해도 유령 도시일 뿐입니다.
9. 거버넌스 설계: 규칙을 바꾸는 규칙
9-1. 업그레이드 가능한 컨트랙트의 양면성
블록체인은 ‘변경 불가능’이 장점이라고 하지만, 실제 대형 가상토지 컨트랙트들은 업그레이드 가능한 구조(프록시 패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는 주소(프록시)는 고정해 두고, 실제 로직을 담은 구현 컨트랙트를 교체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Decentraland의 LAND 레지스트리도 프록시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업그레이드 권한은 Decentraland DAO 체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실에 비유하자면, 업그레이드 권한은 헌법 개정권과 등기법 개정권을 합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설계는 업그레이드에 시간 지연(timelock)을 두어 변경 내용을 미리 공개하고, 다중서명이나 DAO 투표 같은 다층 승인을 요구하며, 소유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대응할 시간을 확보해 줍니다.
9-2. DAO 투표와 토지 기반 투표권
Decentraland DAO에서는 MANA 토큰뿐만 아니라 LAND와 이름(NAME) 등 보유 자산에 따라 투표력이 산정되는 구조가 운영되어 왔습니다. 토지를 가진 사람이 도시 운영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직관적이지만, 이는 동시에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규칙을 정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현실 역사에서도 재산에 따라 투표권을 부여하던 제도가 민주주의 확장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상 도시의 거버넌스 설계는 정치철학적 질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9-3. 분쟁 해결: 오라클과 사람
스마트 컨트랙트는 규칙을 정확히 집행하지만, 규칙 바깥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필지에 저작권을 침해한 콘텐츠나 혐오 표현이 배포되면 누가 내려야 할까요? 블록체인은 소유권을 빼앗을 수 없게 설계되어 있지만, 콘텐츠 서버나 클라이언트 단계에서는 표시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유권은 체인에, 표현의 질서는 커뮤니티 정책에’라는 이원 구조가 형성됩니다. 이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플랫폼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10. 인프라 설계: 어느 체인 위에 땅을 둘 것인가
10-1. 레이어1과 레이어2
이더리움 메인넷은 보안성과 생태계 규모 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거래 수수료(가스비)가 높아질 때가 많습니다. 토지 거래 자체는 자주 일어나지 않더라도, 운영자 지정이나 임대 설정처럼 관리성 트랜잭션이 많아지면 비용 부담이 커집니다. 이 때문에 여러 프로젝트가 Polygon 같은 확장 솔루션이나 사이드체인을 함께 사용합니다. The Sandbox는 LAND를 Polygon으로 브리지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고, Decentraland도 웨어러블 같은 아이템 발행에는 Polygon을 활용하는 등 자산 종류에 따라 체인을 나누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10-2. 브리지의 소유권 문제
토지를 다른 체인으로 옮긴다는 것은 실제로 땅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원래 체인의 브리지 컨트랙트에 토큰을 잠그고 다른 체인에서 대응되는 토큰을 발행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진짜 등기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브리지 컨트랙트가 해킹당하면 잠겨 있던 원본이 탈취되거나, 대응 토큰이 무단 발행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브리지 해킹은 대형 피해가 반복된 영역이므로, 멀티체인 토지 설계는 반드시 브리지 보안 모델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 설계 선택 | 얻는 것 | 잃을 수 있는 것 |
|---|---|---|
| 메인넷 단일 등기 | 최고 수준의 보안, 단일 진실 원천 | 높은 수수료, 낮은 상호작용 빈도 |
| L2·사이드체인 병행 | 저렴하고 빠른 관리 트랜잭션 | 브리지 위험, 유동성 분산 |
| 전용 앱체인 | 성능·규칙의 완전한 맞춤화 | 탈중앙성·생태계 연결성 약화 가능 |
10-3. 메타데이터 영속성
NFT의 tokenURI는 보통 메타데이터 JSON을 가리키는 주소입니다. 이 주소가 운영사의 일반 웹서버라면, 회사가 서버를 내리는 순간 토지의 설명, 이미지, 속성 정보가 접근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 IPFS나 Arweave 같은 분산 저장소, 혹은 온체인 메타데이터를 쓰면 영속성이 높아집니다. 다만 가상토지처럼 계속 업데이트되는 동적 자산은 메타데이터를 완전히 고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엇을 고정하고 무엇을 변경 가능하게 둘지”를 구분하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좌표와 면적은 고정, 지형 표시 이미지는 변경 가능처럼 말이죠.
11. 법적 설계: 토큰을 가졌다고 법적 소유자인가
여기서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가상토지 NFT를 보유한다는 것은 현실 법체계의 부동산 소유권을 갖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 민법상 부동산은 토지와 그 정착물을 말하며, 가상공간의 필지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가상토지 보유자가 실제로 갖는 것은 대체로 다음의 조합입니다.
따라서 플랫폼의 이용약관을 읽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약관이 토큰 보유자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하는지, 운영 주체가 콘텐츠를 제한하거나 서비스를 종료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가 실질적인 ‘소유권의 범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11-1. 한국의 규제 환경
한국에서는 2024년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고, 금융위원회는 이에 앞서 NFT가 가상자산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습니다. 원칙적으로 수집 목적 등으로 발행된 NFT는 가상자산 범위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대량 발행되어 대체 가능하게 쓰이거나, 다른 가상자산과의 교환·지급 수단으로 쓰이는 등 실질이 가상자산에 가까우면 가상자산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또한 수익 분배 구조를 가진 분할 소유 토큰은 자본시장법상 증권 해당 여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결국 가상토지의 분할·수익 분배 구조를 설계할 때는 기술팀뿐 아니라 법률 검토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분야의 규제는 계속 변하고 있으므로, 실제 사업에 적용할 때는 최신 법령과 감독 당국의 해석을 확인해야 합니다.
11-2. 상속과 키 관리
현실 부동산은 소유자가 사망하면 상속 절차를 통해 등기가 이전됩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지갑은 개인키를 아는 사람이 곧 소유자입니다. 개인키나 복구 문구를 분실하면 그 누구도 토지를 되찾을 수 없고, 반대로 유출되면 즉시 탈취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가의 가상토지는 다중서명 지갑, 하드웨어 지갑, 혹은 스마트 계정(계정 추상화)의 소셜 복구 기능을 활용해 보관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소유구조 설계의 마지막 단추는 결국 ‘열쇠를 어떻게 지키고 물려줄 것인가’입니다.
12. 설계 청사진: 하나의 가상 도시를 직접 설계해 본다면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가상의 신규 메타버스 도시 ‘○○시티’의 소유구조를 설계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실제 프로젝트가 아니라 앞서 살펴본 원리를 하나로 엮어 보는 사고 실험입니다.
200 × 200 격자, 총 40,000필지. 중심부 반경 일정 구역은 광장과 도로로 지정해 판매하지 않음. 좌표는 토큰 ID에 비트 인코딩해 위치를 영구 고정.
필지는 ERC-721, 인접 필지 결합은 Estate 컨트랙트. 결합 시 인접성은 오프체인에서 계산한 증명을 온체인에서 간단히 검증하는 방식으로 가스비 절감.
소유자 / 운영자(콘텐츠 배포 전용) / 이용자(ERC-4907 기한부) 3층 구조. 운영자와 이용자는 어떤 경우에도 토큰 이전 불가.
높이·폴리곤·용량 한도는 로그형 증가 공식으로 대형 소유자의 독점적 경관 지배를 억제. 경계 침범 콘텐츠는 배포 서버에서 거부.
전체의 일부는 검증 가능한 난수 기반 추첨, 일부는 크리에이터 기여 기반 배정, 나머지는 시차를 둔 단계별 판매. 한 번에 대량 민팅이 몰리지 않게 구간 분산.
컨트랙트 업그레이드는 타임락 + 다중서명 + 커뮤니티 투표. 투표력은 토지 보유뿐 아니라 실제 활동 지표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좌표·면적 메타데이터는 분산 저장소에 고정. 이용약관에 토큰 보유자의 권리 범위, 서비스 종료 시 처리 방침을 명시.
이렇게 정리해 보면 가상토지 소유구조 설계는 한 사람의 개발자가 컨트랙트 몇 줄을 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엔지니어, 3D 공간 디자이너, 도시계획 감각을 지닌 건축가, 경제 설계자, 법률가, 커뮤니티 운영자가 함께 참여하는 융합 설계 작업입니다. 재능넷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이는 플랫폼이 이런 협업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13. 실험건축의 관점에서 본 가상토지: 무엇이 새로운가
마지막으로 건축의 눈으로 이 주제를 다시 바라봅시다. 가상토지는 건축과 도시 이론에 어떤 새로운 질문을 던질까요?
제인 제이콥스가 현실 도시에서 길거리의 활력과 다양성을 강조했듯, 가상 도시의 성공 역시 정교한 소유구조만으로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좋은 소유구조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짓고, 빌려주고, 협업하고, 머물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시설’이어야 합니다. 등기의 확실성, 권한 분리의 안전성, 공간 규칙의 공정성, 거버넌스의 신뢰성이 그 기반시설의 네 기둥입니다.
🗺️ 한 장으로 정리하는 핵심
• 지적 — 격자와 좌표 인코딩으로 땅의 위치를 영구적으로 고정한다.
• 등기 — ERC-721이 소유 장부가 되고, Estate가 합필을, ERC-6551 같은 표준이 ‘토지와 정착물’의 결합을 가능케 한다.
• 권리 분할 — 소유자·운영자·이용자를 분리해 협업과 임대를 안전하게 만든다.
• 공간 규칙 — 높이·용량·경계 규칙은 주로 오프체인에서 강제되며, 로그형 공식처럼 공정성을 담은 수학이 쓰인다.
• 분배와 거버넌스 — 첫 분배의 공정성과 규칙 변경 권한의 통제가 장기 신뢰를 좌우한다.
• 법과 키 — 토큰 보유는 법적 부동산 소유와 다르며, 약관과 키 관리가 실질 권리를 결정한다.
가상토지는 아직 진행 중인 실험입니다. 뜨거운 투기의 시기를 지나 차분한 재설계의 시기로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이 실험에서 무엇을 배울지 정리하기 좋은 때입니다. 디지털 지적도 위에 다음 세대의 건축가들이 무엇을 세울지, 그리고 그 땅의 규칙을 누가 어떻게 써 내려갈지 지켜보는 일은 미래 건축을 고민하는 모두에게 흥미로운 숙제가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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