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5.0 유벤투스가 9년 동안 세리에 A를 지배한 시대의 전말: 칼치오폴리의 몰락부터 9연속 스쿠데토, 그리고 그 이후까지

유벤투스가 9년 동안 세리에 A를 지배한 시대의 전말: 칼치오폴리의 몰락부터 9연속 스쿠데토, 그리고 그 이후까지
2011-12시즌부터 2019-20시즌까지 아홉 시즌 연속 리그 우승. 유럽 5대 리그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장기 집권이자, 이탈리아 축구사에서는 전례가 없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왕조'는 불과 5년 전, 승부조작 스캔들로 2부 리그에 떨어졌던 클럽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몰락, 재건, 지배, 그리고 균열까지. 그 전 과정을 따라가 봅니다.
1. 프롤로그: 왕조는 폐허 위에서 시작됐다
칼치오폴리, 이탈리아 축구를 뒤흔든 2006년 여름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5월, 이탈리아 검찰의 통화 감청 수사를 통해 일부 클럽 관계자들이 심판 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칼치오폴리(Calciopoli)' 스캔들입니다. 중심에는 당시 유벤투스 단장이던 루치아노 모지가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여름, 이탈리아 대표팀은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부폰, 칸나바로, 잠브로타, 카모라네시, 델 피에로 등 유벤투스 소속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대표팀이 세계 정상에 오른 그 시기에, 클럽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 2004-05, 2005-06시즌 리그 우승 타이틀 박탈 (2004-05는 공석, 2005-06은 인테르에 이관)
· 구단 역사상 최초의 세리에 B 강등
· 2006-07시즌 세리에 B 승점 감점 (항소를 거쳐 최종 -9점으로 경감)
강등과 함께 선수단은 해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칸나바로와 에메르손은 레알 마드리드로, 튀랑과 잠브로타는 바르셀로나로, 이브라히모비치와 비에이라는 인테르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델 피에로, 부폰, 네드베드, 트레제게, 카모라네시는 남았습니다. 월드컵 우승 골키퍼가 2부 리그 경기장에 서는 장면은 지금도 '충성심'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기억입니다. 유벤투스는 감점을 안고도 2006-07시즌 세리에 B를 우승하며 1년 만에 복귀했습니다.
복귀 후의 방황: 두 번의 7위
세리에 A로 돌아온 유벤투스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아래 2007-08시즌 3위, 2008-09시즌 2위로 순조로운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이 시작됐습니다. 2009-10시즌에는 구단 레전드 출신 치로 페라라 감독 체제에서 부진이 이어져 시즌 도중 알베르토 차케로니로 교체됐고 결과는 7위. 2010-11시즌 루이지 델네리 감독 체제에서도 다시 7위에 그쳤습니다.
2년 연속 7위는 '이탈리아 최다 우승 클럽'이라는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성적이었고, 팬들 사이에서는 칼치오폴리 이후 구단이 영영 예전의 위상을 되찾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퍼졌습니다.
2. 재건의 설계도: 사람, 경기장, 그리고 감독
아녤리 가문의 귀환
전환점은 2010년 5월, 안드레아 아녤리의 회장 취임이었습니다. 피아트(FIAT)를 거느린 아녤리 가문은 1923년 이래 유벤투스를 소유해 온 가문이며, 안드레아는 1955~1962년 회장을 지낸 움베르토 아녤리의 아들입니다. 그의 취임으로 가문 출신 인물이 다시 클럽의 전면에 섰습니다.
아녤리는 삼프도리아에서 단장으로 성과를 낸 주세페 '베페' 마로타를 CEO 겸 단장으로, 파비오 파라티치를 스포츠 디렉터(당시 직함은 스카우트 총괄 성격)로 데려왔습니다. 이 프런트 라인은 이후 왕조 시대 대부분의 이적시장을 설계하게 됩니다.
유벤투스 스타디움: 이탈리아 축구의 '부동산 혁명'
재건의 두 번째 축은 경기장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클럽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낡은 다목적 경기장을 임대해 사용했습니다. 유벤투스도 육상 트랙이 있는 스타디오 델레 알피를 썼는데, 관중석과 그라운드의 거리가 멀고 관중 동원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꾸준했습니다.
유벤투스는 델레 알피 부지에 축구 전용 경기장을 새로 지었고, 2011년 9월 8일 유벤투스 스타디움(현 알리안츠 스타디움)이 노츠 카운티와의 친선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약 4만 1천 석 규모의 이 경기장은 세리에 A 주요 클럽 중 최초로 구단이 직접 소유한 현대식 축구 전용구장이었습니다.
경기장을 소유하면 입장 수익뿐 아니라 VIP석·기업 접대석, 경기장 내 상업 시설, 명명권(네이밍 라이츠) 같은 수익원을 클럽이 온전히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클럽들이 프리미어리그·라리가 클럽들에 비해 매치데이 수익에서 크게 뒤처졌던 구조적 약점을, 유벤투스는 가장 먼저 해결한 셈입니다. 경기장의 물리적 거리감이 줄면서 홈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고, 이는 이후 홈에서의 압도적 성적과도 맞물립니다.
안토니오 콘테, 그리고 공짜로 온 '마에스트로'
2011년 5월, 유벤투스는 시에나를 세리에 A로 승격시킨 안토니오 콘테를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콘테는 1990년대 유벤투스의 주장 출신으로, 리피 감독 아래 세리에 A와 1995-96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인물입니다. 패배를 견디지 못하는 강박적인 승부욕,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였습니다.
같은 여름의 영입도 결정적이었습니다. AC 밀란과 계약이 끝난 안드레아 피를로가 자유계약으로 합류했습니다. 밀란은 30대에 접어든 그의 하락세를 예상했지만, 피를로는 유벤투스에서 오히려 커리어 후반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여기에 레버쿠젠에서 아르투로 비달, 라치오에서 슈테판 리히트슈타이너가 합류했고, 기존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중원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3. 아홉 시즌 한눈에 보기
| 시즌 | 감독 | 승점 | 2위(승점) | 격차 |
|---|---|---|---|---|
| 2011-12 | 콘테 | 84 | 밀란(80) | 4 |
| 2012-13 | 콘테 | 87 | 나폴리(78) | 9 |
| 2013-14 | 콘테 | 102 | 로마(85) | 17 |
| 2014-15 | 알레그리 | 87 | 로마(70) | 17 |
| 2015-16 | 알레그리 | 91 | 나폴리(82) | 9 |
| 2016-17 | 알레그리 | 91 | 로마(87) | 4 |
| 2017-18 | 알레그리 | 95 | 나폴리(91) | 4 |
| 2018-19 | 알레그리 | 90 | 나폴리(79) | 11 |
| 2019-20 | 사리 | 83 | 인테르(82) | 1 |
표와 그래프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납니다. 가장 압도적이었던 시기는 2013-14, 2014-15시즌(격차 17점)이고, 오히려 '왕조 후반부'인 2016-17, 2017-18시즌에는 로마와 나폴리가 85~91점이라는, 다른 시대였다면 우승했을 승점을 쌓고도 2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즌인 2019-20에는 격차가 단 1점으로 좁혀졌습니다. 왕조의 끝은 그래프 안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4. 1막 콘테 시대 (2011~2014): 굶주림이 만든 무패 우승
2011-12: 38경기 무패, 세리에 A 최초의 기록
콘테는 처음에 4-2-4에 가까운 공격적인 시스템을 시도했지만, 시즌을 거치며 3-5-2로 정착했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전술 변경이 아니라 보유 자원의 최적 조합이었습니다. 수비에는 안드레아 바르찰리, 레오나르도 보누치, 조르조 키엘리니가 섰고, 중원에는 피를로를 중심으로 비달과 마르키시오가 좌우를 받쳤습니다. 측면 윙백 리히트슈타이너가 쉼 없이 오르내렸습니다.
결과는 역사적이었습니다. 23승 15무 0패, 승점 84점. 38경기 체제의 세리에 A에서 시즌 전체를 무패로 마친 첫 팀이 된 것입니다. 우승 경쟁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고 실바를 보유한 디펜딩 챔피언 AC 밀란이었고, 시즌 맞대결에서는 문타리의 골이 골라인을 넘었음에도 인정되지 않은 판정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유벤투스는 마지막까지 이어진 경쟁 끝에 4점 차로 우승했습니다.
15무라는 숫자가 보여주듯 이 팀은 '모두 이기는 팀'이 아니라 '절대 지지 않는 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에는 구단 레전드 델 피에로의 마지막 시즌이라는 상징성도 겹쳤습니다. 2012년 5월 아탈란타전에서 그는 골을 기록하며 홈 팬들과 작별했습니다.
2012년 여름, 이탈리아 축구계를 강타한 또 다른 승부조작 수사('칼초스코메세')에서 콘테는 시에나 감독 시절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최초 10개월 징계는 항소를 거쳐 4개월로 줄었고, 2012-13시즌 초반에는 코칭스태프인 안젤로 알레시오와 마시모 카레라가 벤치에서 팀을 지휘했습니다. 콘테 본인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2012-13: 포그바라는 '공짜 보물'
2012년 여름 유벤투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끝난 19세 미드필더 폴 포그바를 영입했습니다. 이적료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포그바는 빠르게 피를로·비달·마르키시오와 함께 로테이션에 녹아들었고, 이 네 명의 미드필더 조합은 이후 'MVPP' 같은 별칭으로 불릴 만큼 유럽 정상급 중원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유벤투스는 승점 87점으로 나폴리(78점)를 9점 차로 따돌리며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도 복귀해 8강까지 올랐지만 바이에른 뮌헨에 1, 2차전 합계 0-4로 완패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유럽 최강팀과는 아직 격차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2013-14: 102점, 깨지지 않은 숫자
2013년 여름에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를,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페르난도 요렌테를 데려왔습니다. 그간 유벤투스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확실한 스트라이커' 문제가 해결되자 팀은 폭발했습니다.
33승 3무 2패, 승점 102점. 세리에 A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100점 돌파 시즌입니다. 테베스는 리그 19골을 기록했고, 유벤투스는 홈 19경기를 모두 이기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다시 고배를 마셨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갈라타사라이 원정 패배로 탈락했고, 유로파리그로 내려가 준결승까지 올랐지만 벤피카에 막혔습니다. 그 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전 장소가 하필 유벤투스 스타디움이었다는 점은 아픈 아이러니로 남았습니다.
콘테의 갑작스러운 이별
2014년 7월 중순, 프리시즌 훈련이 시작된 직후 콘테는 상호 합의로 팀을 떠났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100유로로 식당에 가서 10유로짜리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는 취지의 비유를 남겼고, 이는 유럽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더 큰 투자가 필요하다는 불만으로 해석됐습니다. 이후 콘테는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첼시와 인테르를 거치며 다시 유벤투스의 라이벌로 돌아오게 됩니다.
5. 왕조의 척추: 부폰과 BBC
왕조 9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상수를 꼽으라면 수비입니다.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과 바르찰리·보누치·키엘리니로 이어지는 일명 'BBC 라인'은 이탈리아 수비 전통인 '카테나치오'의 현대적 계승자로 평가받았습니다.
2015-16시즌 리그 974분 연속 무실점으로 세리에 A 기록 경신. 2017-18시즌 후 파리 생제르맹으로 떠났다가 2019년 복귀.
2011년 1월 볼프스부르크에서 소액 이적료로 영입. 대인 방어와 위치 선정의 교과서.
2010년 바리에서 합류. 후방 빌드업의 시작점이자 롱패스 능력을 지닌 '수비형 플레이메이커'.
2005년 합류한 원클럽맨에 가까운 존재. 왕조 아홉 시즌 내내 함께한 투쟁심의 상징.
BBC의 진가는 '3백과 4백을 오갈 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세 명 모두 중앙 수비수였지만, 바르찰리는 오른쪽 풀백 역할도, 키엘리니는 왼쪽 측면 수비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후 알레그리 감독은 같은 선수들로 경기 중에도 3-5-2와 4-3-1-2, 4-2-3-1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습니다. 전술 유연성의 토대가 바로 이 수비진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파라티치·마로타 프런트의 영입 철학이 겹칩니다. 피를로·포그바(자유계약), 바르찰리(소액 이적료) 같은 '가성비 영입'이 왕조 초반을 떠받쳤다는 점은 이후 거액 영입 중심으로 바뀐 후반부와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6. 2막 알레그리 시대 (2014~2019): 실용주의의 제국
환영받지 못한 감독
콘테의 후임으로 발표된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는 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직전 시즌 도중 AC 밀란에서 경질된 감독이었고, 일부 팬들은 훈련장 앞에서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알레그리는 2010-11시즌 밀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경험이 있었고, 무엇보다 '시스템보다 선수, 원칙보다 결과'를 앞세우는 실용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콘테의 3-5-2를 유지하다가 점차 4백 기반 전술로 옮겨갔습니다. 강박적으로 조직을 다그치던 콘테와 달리, 알레그리는 선수들에게 자율과 여유를 주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는 "축구는 단순하다"는 말을 자주 했고, 이기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2014-15: 베를린까지 간 '더블'
알레그리의 첫 시즌, 유벤투스는 승점 87점으로 로마를 17점 차로 앞서며 4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테베스는 리그 20골로 팀 공격을 이끌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입된 젊은 공격수 알바로 모라타가 성장했습니다. 코파 이탈리아도 우승하며 리그와 컵을 동시에 차지하는 '더블'을 완성했습니다.
진짜 놀라움은 유럽 무대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도르트문트를, 8강에서 모나코를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를 제압했습니다. 친정팀을 상대로 1, 2차전 모두 골을 기록한 모라타의 활약이 결정적이었습니다.
2015년 6월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결승 상대는 메시·수아레스·네이마르의 'MSN'을 앞세운 바르셀로나였습니다. 유벤투스는 모라타의 동점골로 1-1을 만들며 저항했지만 결국 1-3으로 패했습니다. 그래도 2003년 이후 12년 만의 결승 진출은 '이탈리아 클럽도 다시 유럽 정상권에 설 수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2015-16: 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
2015년 여름, 왕조의 1세대 핵심이 대거 떠났습니다. 피를로는 뉴욕 시티로, 비달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테베스는 친정 보카 주니어스로 향했습니다. 대신 팔레르모에서 파울로 디발라, 볼프스부르크에서 마리오 만주키치, 레알 마드리드에서 사미 케디라(자유계약), 포르투에서 알렉스 산드루가 합류했습니다.
세대교체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2015년 10월 말 사수올로 원정 패배 이후 유벤투스는 10경기에서 3승 3무 4패, 승점 12점으로 리그 중하위권까지 떨어졌습니다. 언론은 왕조의 종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유벤투스는 믿기 어려운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진 26경기에서 25승 1무를 거두며 순위를 끌어올렸고, 2016년 2월 선두 경쟁자 나폴리와의 홈경기에서 시모네 차차의 막판 결승골로 1-0 승리하며 선두를 탈환했습니다. 이 기간 부폰은 리그 974분 연속 무실점이라는 세리에 A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최종 승점 91점, 5연패. 코파 이탈리아까지 우승하며 2년 연속 더블을 차지했습니다.
1) 디발라가 리그 19골로 테베스의 공백을 빠르게 메웠습니다.
2) 포그바가 피를로·비달 이탈 이후 중원의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3) 무엇보다 BBC와 부폰의 수비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세대교체가 공격진과 중원에서 이뤄지는 동안 수비진이 그대로였다는 점이 회복력의 원천이었습니다.
2016-17: 이과인, 그리고 '다섯 개의 별'
2016년 여름은 유벤투스의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시장이었습니다. 직전 시즌 나폴리에서 리그 36골로 세리에 A 단일 시즌 최다 골 기록을 세운 곤살로 이과인을 바이아웃 금액인 9천만 유로에 영입했습니다. 로마에서는 미랄렘 퍄니치를, 바이에른에서는 메디 베나티아를, 바르셀로나에서는 다니 알베스를 데려왔습니다. 라이벌 팀의 핵심을 빼오는 이 행보는 국내 경쟁자들을 약화시키면서 자신을 강화하는 이중 효과를 냈습니다.
반면 포그바는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였던 1억 유로대 금액(옵션 포함 보도 기준)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복귀했습니다. 2012년 자유계약으로 데려온 선수를 이 금액에 판 것은 마로타·파라티치 프런트의 수완을 상징하는 거래로 꼽힙니다.
2017년 1월, 피오렌티나 원정 패배 이후 알레그리는 과감한 전술 변화를 단행했습니다. 퍄니치와 케디라를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두고, 그 앞에 콰드라도·디발라·만주키치, 최전방에 이과인을 세우는 4-2-3-1, 일명 '다섯 개의 별' 시스템입니다. 특히 정통 스트라이커인 만주키치를 왼쪽 윙어로 기용하며 수비 가담과 공중볼 경합을 동시에 맡긴 것은 알레그리 실용주의의 정수로 회자됩니다.
이 시스템으로 유벤투스는 다시 독주했습니다. 로마가 87점이라는 높은 승점을 기록했지만 유벤투스는 91점으로 6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리그 역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 경신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최장 기록은 '5연패'로, 1930년대 유벤투스의 '황금의 5년(Quinquennio d'Oro)', 1940년대 '그란데 토리노', 그리고 2005-06~2009-10시즌 인테르(2005-06은 칼치오폴리로 이관된 타이틀 포함)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코파 이탈리아도 3년 연속 우승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 2차전 합계 3-0 무실점 승리를 거두며 다시 결승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2017년 6월 카디프에서 열린 결승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에 1-4로 패했습니다. 만주키치의 환상적인 오버헤드킥 동점골이 있었지만 후반에 무너졌습니다.
2017-18: 사리의 나폴리와 벌인 왕조 최대의 혈투
2017년 여름, 보누치가 AC 밀란으로 이적하며 BBC 라인이 처음으로 깨졌습니다. 다니 알베스도 파리로 떠났습니다. 한편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의 나폴리는 짧은 패스로 상대를 해체하는 아름다운 축구로 유럽 전역의 찬사를 받으며 강력한 도전자로 떠올랐습니다.
시즌은 마지막까지 박빙이었습니다. 결정적 장면은 2018년 4월에 몰려 있습니다.
토리노에서 열린 맞대결에서 나폴리가 경기 막판 칼리두 쿨리발리의 헤더 결승골로 1-0 승리. 격차는 1점으로 좁혀졌고, 나폴리의 역전 우승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유벤투스가 인테르 원정에서 0-1, 이후 1-2로 끌려가다 경기 막판 연속 골로 3-2 역전승. 같은 주말 나폴리는 피오렌티나 원정에서 0-3으로 대패했습니다.
로마 원정 무승부로 우승 확정. 7연패.
최종 승점 유벤투스 95점, 나폴리 91점. 나폴리는 구단 역사상 최다 승점을 쌓고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인테르전 판정을 둘러싼 논란은 나폴리 팬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되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유벤투스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밀란을 4-0으로 꺾고 4년 연속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이 시즌 디발라는 리그 22골을 기록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부폰은 17년간 몸담은 유벤투스를 떠나 파리 생제르맹으로 향했습니다.
2018-19: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아약스의 충격
2018년 7월, 유벤투스는 축구계를 뒤흔드는 영입을 발표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네 차례 함께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약 1억 유로의 이적료로 데려온 것입니다. 33세 선수에게 쓴 금액으로는 전례가 없는 규모였습니다.
이 영입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리그는 이미 정복했고, 남은 것은 1996년 이후 들어 올리지 못한 챔피언스리그 트로피였습니다. 동시에 호날두는 유벤투스라는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알리는 상업적 카드이기도 했습니다. 보누치도 1년 만에 밀란에서 복귀했습니다.
리그에서는 다시 독주였습니다. 유벤투스는 2019년 4월 20일 피오렌티나전 승리로 시즌 5경기를 남기고 8연패를 확정했고, 최종 승점 90점으로 나폴리를 11점 차로 앞섰습니다. 호날두는 리그 21골을 넣으며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 세 리그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2019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도 호날두의 결승골로 밀란을 1-0으로 꺾었습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는 다시 아픔을 남겼습니다. 16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1차전 0-2로 진 뒤 2차전에서 호날두의 해트트릭으로 3-0 역전승을 거두며 '이것이 호날두를 산 이유'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8강에서 젊은 선수 중심의 아약스에 1, 2차전 합계 2-3으로 탈락했습니다. 특히 홈 2차전에서 마테이스 더 리흐트에게 헤더 결승골을 내준 장면은 상징적이었고, 유벤투스는 그해 여름 바로 그 더 리흐트를 영입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는 알레그리와 결별했습니다. 다섯 시즌 동안 리그 5회,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 2회라는 결과를 남긴 이별이었습니다.
7. 3막 사리 시대 (2019~2020): 마지막 별, 그리고 균열
'사리볼'에 대한 기대와 현실
유벤투스가 선택한 후임은 아이러니하게도 2017-18시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마우리치오 사리였습니다. 첼시에서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한 그는 '이기기만 하는 축구'에서 벗어나 '아름답게 이기는 축구'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선택이었습니다. 나폴리 팬들에게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해 여름 유벤투스는 더 리흐트(약 7,500만 유로), 아론 램지와 아드리앵 라비오(이상 자유계약)를 영입했습니다. 마로타는 이미 2018년 가을 구단을 떠나 인테르 CEO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고, 이제 이적시장의 주도권은 파라티치에게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시즌, 1점 차 우승
2019-20시즌은 축구 역사상 가장 특이한 시즌 중 하나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았고, 세리에 A는 2020년 3월 중단되었다가 6월 무관중으로 재개했습니다.
사리의 유벤투스는 그가 원했던 빠른 패스 축구를 완전히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호날두가 리그 31골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인테르(당시 감독은 콘테)와 라치오의 추격을 따돌렸습니다. 2020년 7월 26일 삼프도리아전 승리로 우승을 확정했고, 최종 승점은 83점. 2위 인테르와의 격차는 단 1점이었습니다. 이렇게 9연패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9번째 우승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20년 8월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리옹에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탈락하자, 유벤투스는 바로 다음 날 사리를 경질했습니다. 리그 우승 감독이 시즌 직후 경질되는 장면은 '이제 리그 우승만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왕조 말기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후임으로는 감독 경험이 없던 레전드 안드레아 피를로가 선임되었습니다.
8. 10연패는 없었다: 콘테의 인테르가 끊은 사슬
2020-21시즌, 유벤투스는 '10연패(Decima)'라는 새로운 목표를 내걸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우승은 다름 아닌 안토니오 콘테가 지휘한 인테르에게 돌아갔습니다. 유벤투스 왕조의 첫 세 개 트로피를 만든 감독이, 그 왕조를 끝낸 감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테르의 프런트를 이끈 인물은 마로타였습니다. 유벤투스 재건의 두 핵심 설계자가 라이벌 팀에서 다시 만나 사슬을 끊었다는 점은 이 시대의 결말을 더 극적으로 만듭니다.
유벤투스는 이 시즌 최종일에야 4위를 확정하며 간신히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지켰습니다. 피를로는 코파 이탈리아와 수페르코파를 들어 올렸지만 1년 만에 물러났고, 알레그리가 2021년 복귀했습니다. 같은 해 여름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떠났습니다.
| 구분 | 콘테 (3시즌) | 알레그리 (5시즌) | 사리 (1시즌) |
|---|---|---|---|
| 리그 우승 | 3회 | 5회 | 1회 |
| 코파 이탈리아 | - | 4회 | - |
| 수페르코파 | 2회 | 2회 | - |
| UCL 최고 성적 | 8강 | 준우승 2회 | 16강 |
| 대표 전술 | 3-5-2 | 4-3-1-2, 4-2-3-1 등 유연 | 4-3-3 |
9. 왜 유벤투스만 9년을 버틸 수 있었나: 구조적 분석
9연패는 한두 명의 천재나 운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경기장 안과 밖의 요소가 겹겹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 지식이 맞물려야 성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축구 클럽 운영은 재능넷 같은 플랫폼에서 서로 다른 재능이 만나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① 경쟁자들의 동시 몰락
유벤투스가 강해진 2010년대 초반, 전통의 경쟁자인 밀라노의 두 클럽은 동시에 쇠퇴기에 들어섰습니다. AC 밀란은 베를루스코니 체제 말기의 긴축과 2017년 중국 자본으로의 소유권 이전, 이어진 재정 혼란을 겪었습니다. 인테르는 2010년 트레블 이후 노쇠화와 모라티 회장 시대의 종료, 인도네시아 자본(토히르)을 거쳐 중국 쑤닝 그룹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었습니다. 두 클럽은 이 기간 상당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조차 놓쳤습니다.
로마와 나폴리는 꾸준히 도전했지만, 유벤투스만큼의 재정 규모와 스쿼드 두께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키운 핵심 선수(퍄니치, 이과인 등)가 유벤투스로 이적하는 구조가 반복되었습니다.
② 수익 구조의 격차 확대
소유 경기장, 챔피언스리그 단골 출전에 따른 UEFA 배당금, 그리고 2017년 계약된 아디다스 스폰서십 등 상업 수익 증대가 겹치며 유벤투스의 매출은 이탈리아 내 다른 클럽들을 크게 앞서게 되었습니다. 딜로이트가 매년 발표하는 '풋볼 머니 리그'에서도 유벤투스는 이 기간 이탈리아 클럽 중 꾸준히 1위를 지켰습니다. 2017년에는 기존 엠블럼을 단순한 'J' 형태의 로고로 교체하며 축구 클럽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③ 이적시장의 선순환 (전반부)
왕조 전반부의 영입은 '저비용·고효율'이었습니다. 피를로, 포그바, 케디라, 라비오처럼 자유계약 선수를 적극 활용했고, 테베스와 바르찰리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에 경험 많은 선수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포그바, 비달, 모라타 같은 선수를 높은 가격에 팔아 재투자했습니다. 이 선순환이 국내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꾸준히 넓혔습니다.
④ '이기는 문화'의 세대 전승
부폰, 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찰리, 마르키시오처럼 오랫동안 남은 선수들이 '유벤투스에서 2위는 실패'라는 기준을 새로 온 선수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Vincere non è importante, è l'unica cosa che conta(이기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라 유일한 것이다)"라는, 구단 정신을 대표하는 문장은 이 시기 팬들의 구호처럼 쓰였습니다. 2015-16시즌 중하위권에서 25승 1무로 뒤집은 반전은 이 문화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⑤ 감독 교체 타이밍
세 명의 감독은 각기 다른 시기에 맞는 역할을 했습니다. 콘테는 무너진 팀에 규율과 투쟁심을 불어넣었고, 알레그리는 스타 선수들을 관리하며 유연하게 결과를 냈고, 사리는 마지막 한 시즌을 버텨냈습니다. 콘테가 떠난 순간 팀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알레그리가 기존 시스템을 갑자기 뒤엎지 않고 점진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10. 그림자: 지배가 남긴 비용과 논란
세리에 A의 경쟁력 논쟁
장기 독주는 리그 전체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매 시즌 '유벤투스가 우승하는 리그'라는 이미지는 해외 중계권 협상에서도 약점으로 거론되었습니다. 다만 앞서 본 것처럼 로마·나폴리가 85~91점을 기록한 시즌들도 있었던 만큼, 경쟁이 없었다기보다 '경쟁해도 이기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호날두 영입 이후의 재정 부담
호날두 영입은 브랜드 가치와 유니폼 판매, 소셜미디어 팔로워 증가 등 상업적 효과를 가져왔지만, 고액 연봉은 구단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경기와 매출 감소가 겹치면서 유벤투스는 대규모 손실과 여러 차례의 증자를 겪었습니다. 왕조 후반부의 이적시장은 전반부의 '가성비' 기조에서 벗어나 고액 영입과 고액 연봉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슈퍼리그와 회계 수사
2021년 4월, 아녤리 회장은 유럽 빅클럽들이 주도한 유러피언 슈퍼리그 창설 시도의 핵심 인물로 나섰습니다.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연쇄 이탈로 구상은 며칠 만에 무산되었고, 아녤리는 UEFA 및 다른 클럽들과 깊은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어 이탈리아 검찰은 선수 이적 과정에서 장부상 이익(플루스발렌차)을 부풀렸다는 의혹과 코로나19 시기 선수 급여 처리 문제 등을 수사했습니다. 2022년 11월 아녤리 회장을 포함한 이사회 전원이 사퇴했고, 이후 이탈리아 축구 사법기관의 판단에 따라 유벤투스는 2022-23시즌 승점 10점 감점 징계를 받았습니다. UEFA도 재정 규정 위반을 이유로 유벤투스를 2023-24시즌 유럽대항전(콘퍼런스리그)에서 제외하고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아녤리와 파라티치 등 당시 경영진도 직무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회계 관련 징계는 2022-23시즌 승점 감점과 관계자 징계로 이뤄졌으며, 2011-12 ~ 2019-20시즌의 리그 우승 타이틀은 박탈되지 않았습니다. 칼치오폴리 때 타이틀이 박탈된 것과는 성격이 다른 사안입니다. 다만 왕조 말기의 재정 운영이 이후 클럽에 긴 후유증을 남겼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11. 에필로그: 9년이 남긴 것
유벤투스의 9연패는 이탈리아 축구사에서 여러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칼치오폴리로 강등된 클럽이 5년 만에 리그를 지배한 재건 사례입니다. 둘째, 소유 경기장을 중심으로 한 수익 구조 개혁이 성적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 이탈리아 클럽 경영의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셋째, 콘테의 3-5-2, 알레그리의 유연한 실용주의, BBC로 대표되는 수비 전통이 2010년대 전술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동시에 이 시대는 끝내 풀지 못한 숙제도 남겼습니다.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패배, 호날두라는 마지막 승부수에도 닿지 못한 '빅이어'. 국내 무대의 절대 강자가 유럽 무대에서는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9연패의 영광과 함께 유벤투스 팬들에게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왕조를 끝낸 것이 왕조를 시작한 감독과 단장이었다는 결말은, 축구가 왜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리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몰락(2006) → 재건(2010~2011: 아녤리·마로타·경기장·콘테) → 지배(2012~2020: 9연속 스쿠데토, 810점) → 균열(2020~: 인테르의 우승, 재정 위기, 회계 징계).
유벤투스의 9년은 '어떻게 왕조를 세우는가'와 '왕조는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동시에 보여준, 현대 축구에서 가장 교과서적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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