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4.0 유벤투스의 영원한 10번,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 비앙코네리 최다 출장·최다 득점 전설의 커리어 기록

유벤투스의 영원한 10번,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 비앙코네리 최다 출장·최다 득점 전설의 커리어 기록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위에 새겨진 이름, 19년의 충성, 그리고 '델 피에로 존'
들어가며: 왜 아직도 "델 피에로"인가
자, 친구야. 축구 좀 본다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선수" 얘기가 나오면 꼭 등장하는 이름이 있어.
바치오? 토티? 피를로? 다 맞는 말이지. 근데 유벤투스라는 단어 하나를 붙이는 순간, 답은 거의 하나로 좁혀져.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o Del Piero).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9시즌을 한 클럽에서만 뛴 남자.
요즘 축구판에서 19년 원클럽맨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치인지 알지? 이적료가 폭등하고, 에이전트가 시즌마다 전화를 돌리고, SNS로 "탈퇴 암시 좋아요"를 누르는 시대에 말이야.
게다가 그냥 오래 있었던 게 아니야. 유벤투스 구단 역사상 최다 출장(705경기)이자 최다 득점(290골). 두 부문 모두 1위. 이건 앞으로 깨지기 굉장히 어려운 기록이야.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 하나 더. 2006년 칼치오폴리 강등 사태 때, 대부분의 스타들이 팀을 떠날 때 그는 세리에 B에 남았어. 이탈리아 2부리그에서 발롱도르 후보급 선수가 뛴다는 게 상상이 가?
오늘은 이 사람의 커리어를 팩트 중심으로, 그런데 너무 딱딱하지 않게 쭉 풀어볼게. 커피 한 잔 챙기고 앉아봐.
1. 콘글리아노에서 온 소년 — 원래는 골키퍼였다
델 피에로는 1974년 11월 9일,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 트레비소 현의 콘글리아노(Conegliano)에서 태어났어. 근처 사치레(Saccile)에서 자랐고.
집은 부유하지 않았어. 아버지 잔니는 전기 기술자였고, 어린 알레산드로도 아버지 일을 도왔다고 해. 형 스테파노 역시 축구를 했는데, 동생에게 큰 영향을 줬지.
재미있는 팩트 하나. 어린 시절 그의 포지션은 골키퍼였어. 우상은 이탈리아의 전설적 GK 디노 조프였다고. 상상이 가? 그 왼발 감아차기의 주인공이 장갑을 끼고 있었다니.
형 스테파노가 "골키퍼는 재미없다, 필드 플레이어를 해라"라고 조언했고, 그 말 한마디가 축구사를 바꿨어. 만약 그대로 골키퍼를 했다면 우리는 '델 피에로 존'이라는 단어를 몰랐을 거야.
파도바에서의 프로 데뷔
유소년기는 산 비토 알 탈리아멘토에서 보냈고, 1991년 세리에 B 클럽 파도바(Padova)에 입단해. 프로 데뷔는 1991-92시즌, 만 17세였지.
파도바에서 2시즌 동안 세리에 B 14경기 1골. 숫자만 보면 평범하지? 하지만 유벤투스 스카우트들은 그 마른 몸의 10대에게서 뭔가를 봤어.
1993년 여름, 유벤투스가 그를 데려와. 이적료는 당시 기준 약 30억 리라 수준으로 알려져 있어. 그리고 이 계약은 유벤투스 역사상 가장 수익률 높은 투자 중 하나가 됐지.
2. 로베르토 바지오의 등번호를 물려받다
1993-94시즌,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에서 데뷔해. 첫 세리에 A 골은 1994년 9월, 포자(Foggia)전 해트트릭. 만 19세 어린 선수가 1군 무대에서 3골을 몰아친 거야.
그런데 당시 유벤투스에는 이미 신이 있었어. 로베르토 바지오. 1993년 발롱도르 수상자, '디비나 코다(신성한 꽁지머리)'.
같은 포지션(세컨드 스트라이커/트레콰르티스타)이었지. 보통 이런 구도면 어린 선수가 임대를 가거나 밀려나. 그런데 감독 마르첼로 리피가 1994년 부임하면서 상황이 바뀌어.
🔑 리피의 선택
리피는 젊은 델 피에로를 주전으로 밀었어. 부상도 있었던 바지오는 점점 벤치로.
결국 1995년 여름 바지오는 AC 밀란으로 이적했고, 델 피에로는 그가 남긴 10번을 물려받아. 이때부터 '유벤투스의 10번'이라는 서사가 시작돼.
부담이 엄청났겠지? 발롱도르 위너의 등번호를 열아홉 살 애가 물려받는 건데. 근데 그는 그 무게를 견디는 정도가 아니라, 그 번호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어.
1995-96: 첫 스쿠데토, 그리고 유럽 정복
1994-95시즌 유벤투스는 9년 만에 세리에 A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를 동시에 차지해. 델 피에로는 리그 29경기 8골로 기여했지.
그리고 다음 시즌, 진짜 사건이 터져. 1995-96 UEFA 챔피언스리그.
1996년 5월 22일 로마 올림피코에서 열린 결승, 상대는 아약스. 당시 아약스는 1995년 챔피언, 클라위버르트·다비즈·리트마넌·판데르사르가 있던 팀이야.
1-1 무승부 후 승부차기. 유벤투스가 4-2로 이기며 11년 만의 빅이어를 들어 올려. 델 피에로는 21세 나이에 유럽 챔피언이 됐어.
그해 11월엔 도쿄에서 열린 인터컨티넨탈컵에서 리버 플레이트를 1-0으로 꺾고 세계 챔피언까지. 그리고 UEFA 슈퍼컵도 획득. 20대 초반에 클럽으로 딸 수 있는 건 거의 다 딴 셈이야.
3. '델 피에로 존' — 축구 용어사전에 이름을 새기다
자, 이제 그 유명한 얘기. "Zona Del Piero(델 피에로 존)".
이게 뭐냐면, 왼쪽 측면과 페널티 박스 사이의 애매한 지점이야. 각도상 슛하기 어렵고, 크로스를 올리기엔 너무 안쪽인 그 공간.
델 피에로는 거기서 왼발 인사이드로 공을 감아서, 먼 쪽 상단 구석(far post top corner)에 꽂아 넣었어.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커리어 내내 반복적으로.
"그 구역에서 공을 잡으면, 상대 골키퍼는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이탈리아 언론이 'Zona Del Piero'를 설명하는 흔한 표현
원래 오른발잡이인데 왼발 슈팅이 주무기라는 점도 흥미로워. 실제로 그는 양발을 다 쓸 수 있었고, 프리킥도 양발로 찼어.
그의 플레이 스타일, 한 줄 요약이 안 되는 이유
델 피에로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워. 왜냐면 커리어 내내 역할이 계속 바뀌었거든.
초기(1994~1998)에는 폭발적인 드리블과 순간 가속을 가진 세컨드 스트라이커였어. 비안리, 라바넬리, 나중엔 인자기 뒤에서 뛰었지.
중기(2000년대 초반)에는 트레콰르티스타(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려와 창의적인 패스를 뿌렸고.
후기(2006 이후)에는 폭발력이 줄어든 대신 위치선정, 골 결정력, 세트피스로 승부했어. 그래서 서른한 살에 세리에 A 득점왕이 가능했던 거야.
델 피에로의 무기 정리
1) 왼발 감아차기 (Zona Del Piero)
2) 프리킥 — 유벤투스에서 프리킥으로만 40골 이상 기록
3) 페널티킥 — 성공률이 매우 높았던 확실한 키커
4) 비전과 패스 — 어시스트도 꾸준히 두 자릿수 근처
5) 리더십 — 2001년부터 은퇴까지 유벤투스 주장
4. 1998년, 커리어를 반으로 가른 무릎 부상
1997-98시즌은 델 피에로 커리어의 정점이었어. 리그 32경기 21골,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0골. 유벤투스는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그해 발롱도르 2위였어. 1위는 지네딘 지단, 3위는 호나우두.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 그리고 1998년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에도 선정돼.
그런데 1998년 11월 8일. 우디네세와의 원정 경기에서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
이건 단순한 부상이 아니었어. 1990년대 후반 십자인대 부상은 지금보다 회복 프로토콜이 훨씬 미숙했거든. 그는 6개월 이상 결장했고, 복귀 후에도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력이 예전 같지 않았어.
많은 이탈리아 기자들이 말해. "부상이 없었다면 델 피에로는 발롱도르를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1998년 그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었어.
암흑기 그리고 재발명
1999~2001년은 그에게 힘든 시기였어. 골이 줄었고, 언론은 "끝났다"고 썼지. 2000-01시즌엔 리그 9골에 그쳤어.
하지만 그는 포지션을 바꾸고, 플레이 방식을 바꾸고, 몸을 다시 만들었어. 스피드를 잃은 대신 지능을 키운 거야.
그리고 2001년, 주장 완장을 물려받아. 이후 은퇴까지 11년간 유벤투스의 캡틴이었지.
5. 2006년 칼치오폴리 — 진짜 전설이 되는 순간
여기가 이 이야기의 심장이야.
2006년, 이탈리아 축구를 뒤흔든 칼치오폴리(Calciopoli)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졌어. 유벤투스는 2004-05, 2005-06 시즌 스쿠데토를 박탈당하고 세리에 B로 강등, 거기에 승점 감점까지 받았지.
클럽은 붕괴됐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인터 밀란으로, 파비오 칸나바로와 에메르송은 레알 마드리드로, 파트리크 비에이라는 인터로, 리리안 튀랑은 바르셀로나로 떠났어.
그런데 남은 사람들이 있었어. 델 피에로, 잔루이지 부폰, 파벨 네드베드, 마우로 카모라네시, 다비드 트레제게.
💡 왜 이게 대단한가?
당시 델 피에로는 2006 월드컵 우승 멤버였어. 만 31세, 아직 최고 리그에서 충분히 뛸 수 있는 나이.
세리에 B는 TV 중계도 적고, 경기장 수준도 다르고, 발롱도르 후보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무대야.
그럼에도 그는 남았고, 2006-07 세리에 B에서 21골을 넣으며 팀을 우승과 즉시 승격으로 이끌었어.
이게 유벤투스 팬들이 그를 단순한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우리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야. 위기 때 남은 사람. 계산하지 않은 사람.
복귀, 그리고 서른둘의 득점왕
2007-08시즌 세리에 A로 돌아온 유벤투스. 델 피에로는 만 33세 시즌에 리그 21골로 세리에 A 득점왕(카포칸노니에레)에 오르며 모두를 놀라게 해.
커리어 처음이자 유일한 득점왕이 서른셋에 찾아온 거야. 보통 공격수가 하향세에 접어드는 나이에 말이지.
그리고 2008-09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 원정,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골을 터뜨려 2-0 승리를 이끌었어. 경기 후 베르나베우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냈지. 상대 팬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6. 숫자로 보는 델 피에로
감성 얘기는 잠깐 접고, 팩트 숫자를 보자. 이 기록들이 진짜 설득력이니까.
| 구분 | 기록 | 비고 |
|---|---|---|
| 유벤투스 통산 출장 | 705경기 | 구단 역대 1위 |
| 유벤투스 통산 득점 | 290골 | 구단 역대 1위 |
| 세리에 A 통산 득점 | 188골 | 리그 역대 상위권 |
| 세리에 A 득점왕 | 1회 (2007-08, 21골) | 만 33세 시즌 |
| 이탈리아 A매치 | 91경기 27골 | 1995~2008 |
| 발롱도르 최고 순위 | 2위 (1998) | 1위 지단 |
| 유벤투스 주장 기간 | 2001~2012 (11년) | 구단 최장기급 |
클럽 우승 트로피
| 대회 | 횟수 | 연도 |
|---|---|---|
| 세리에 A | 6회 | 1995, 1997, 1998, 2002, 2003, 2012 |
| 세리에 B | 1회 | 2007 |
| 코파 이탈리아 | 1회 | 1995 |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4회 | 1995, 1997, 2002, 2003 |
| UEFA 챔피언스리그 | 1회 | 1996 |
| UEFA 슈퍼컵 | 1회 | 1996 |
| 인터컨티넨탈컵 | 1회 | 1996 |
※ 2005, 2006 스쿠데토는 칼치오폴리로 박탈되어 위 집계에서 제외. 이 부분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야.
7. 아주리 블루 — 2006 월드컵과 그 애증
클럽에선 신이었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에서의 델 피에로는 조금 복잡한 이야기야.
1995년 A매치 데뷔. 이후 1998 월드컵, 유로 2000, 2002 월드컵, 유로 2004, 2006 월드컵, 유로 2008까지 주요 대회에 거의 다 나갔어.
아쉬웠던 순간들
유로 2000 결승. 프랑스전에서 1-0으로 앞서던 후반, 델 피에로에게 결정적인 찬스가 두 번 왔어. 하나만 넣었어도 이탈리아가 우승이었지.
둘 다 놓쳤고, 결국 실뱅 윌토르의 동점골, 트레제게의 골든골로 이탈리아는 준우승. 이탈리아 언론은 한동안 그를 심하게 몰아붙였어.
2002 월드컵에서도 기복 있는 모습. 이 시기 그는 대표팀에서 '재능은 있지만 큰 경기에서 결정적이지 못한 선수'라는 꼬리표에 시달렸어.
2006년 독일, 마침내 정상
그리고 2006년 여름, 마르첼로 리피 감독 밑에서 반전이 일어나. 리피는 유벤투스 시절 델 피에로를 키운 감독이지.
델 피에로는 주전은 아니었지만 조커로서 핵심 역할을 했어. 하이라이트는 독일과의 준결승 연장 후반.
이미 그로소가 119분에 선제골을 넣은 상황.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질라르디노의 패스를 받은 델 피에로가 역습 상황에서 특유의 왼발 감아차기로 렌 골대 구석에 꽂아 넣어. 2-0.
이 골은 이탈리아 축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골 중 하나야. 그가 두 팔을 벌리고 포효하던 그 장면, 지금 봐도 소름 돋아.
결승 프랑스전에서는 교체 출전해 승부차기 4번 키커로 성공. 이탈리아는 5-3으로 이기고 1982년 이후 24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달성해.
🏆 서사의 완성
유로 2000 결승에서 찬스를 놓쳐 비난받던 선수가,
6년 뒤 같은 상대 프랑스를 상대로 한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월드컵을 들어 올린다.
이런 건 드라마 작가도 못 쓰는 각본이야.
대표팀 마지막 경기는 유로 2008 스페인과의 8강전(승부차기 패배). A매치 통산 91경기 27골로 마무리됐어.
8. 2012년 5월 13일 — 마지막 기립박수
2011-12시즌.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유벤투스는 세리에 A 38경기 무패 우승이라는 역사적 시즌을 만들어냈어.
델 피에로는 이 시즌 주전이 아니었어. 만 37세, 출전 시간은 제한적이었지. 그래도 리그 5골을 넣으며 마지막 스쿠데토를 함께했어.
그리고 2012년 5월 13일, 유벤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탈란타전. 그의 홈 고별전이었어.
경기 도중 그가 골을 넣고, 관중석 전체가 일어나 울었어. 경기 후 그는 마이크를 잡고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 검은색과 흰색으로 가득 찬 스타디움에서.
"나는 이곳에서 소년으로 왔고, 남자로 떠난다. 유벤투스는 내 인생 그 자체였다."
— 고별 무대에서 그가 남긴 취지의 말
구단은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하지 않았어. 대신 "10번은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후배들에게 물려줬지. 이후 카를로스 테베즈, 폴 포그바, 파울로 디발라 같은 선수들이 그 번호를 달았어.
그리고 유벤투스 스타디움(현 알리안츠 스타디움) 외벽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별이 있어. 유벤투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을 기리는 'Walk of Fame'에 말이야.
9. 시드니 FC, 델리 다이너모스 — 마지막 여행
유벤투스를 떠난 후 그는 은퇴하지 않았어. 오히려 새로운 곳으로 떠났지.
2012년, 호주 A리그의 시드니 FC에 입단해. 이건 호주 축구계에 엄청난 사건이었어. 월드컵 우승자이자 챔피언스리그 우승자가 A리그에 온다니.
그는 시드니에서 2시즌 48경기 24골을 기록하며 리그 흥행에 크게 기여했어. A리그 관중 수와 국제적 인지도를 확 끌어올렸지. 구단 역대 최고의 마케팅 영입으로 평가받아.
2014년에는 인도 슈퍼리그(ISL)의 델리 다이너모스에서 마퀴 플레이어로 뛰었어. 그리고 2015년, 만 40세에 공식 은퇴를 선언해.
은퇴 후의 델 피에로
· 스카이 스포츠 이탈리아 등에서 축구 해설가·분석가로 활동
·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레스토랑 사업 운영
· 유벤투스 관련 행사 및 레전드 매치 참여
· 2023년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관련 헌액 및 다수의 공로상 수상
10. 세리머니 이야기 — 혀 내밀기와 셔츠 문구
델 피에로 하면 떠오르는 세리머니가 있지? 골 넣고 혀를 내밀며 달려가는 그 모습.
이건 계산된 퍼포먼스라기보다, 골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 폭발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어. 그래서 더 사랑받았고.
또 하나. 199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직후, 그리고 여러 중요한 순간에 그는 유니폼 안에 메시지가 적힌 셔츠를 입고 나오기도 했어. 가족이나 친구에게 바치는 헌사였지.
특히 2006년 월드컵 준결승 골 이후의 포효, 2008년 베르나베우 2골 후의 담담한 표정 — 각 시기마다 그의 세리머니는 커리어의 단계를 그대로 보여줘.
인성으로도 유명했던 선수
델 피에로는 스캔들이 거의 없는 선수였어. 19년 커리어 동안 심각한 징계나 언론 논란이 놀라울 만큼 적었지.
상대 선수를 존중하고, 심판에게 격하게 항의하는 일이 드물고, 후배들을 챙기는 주장.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갈란투오모(신사)"라는 별칭으로 불렸어.
2008년 FIFA 페어플레이 관련 평가와 다수의 스포츠맨십 상 후보에 오른 것도 우연이 아니야.
11. 델 피에로 vs 토티 — 이탈리아의 영원한 떡밥
이탈리아 축구 팬들 사이의 최고 떡밥이지. 델 피에로(유벤투스) vs 프란체스코 토티(로마).
둘 다 원클럽맨, 둘 다 10번, 둘 다 2006 월드컵 우승 멤버. 근데 스타일과 커리어 궤적은 꽤 달라.
| 비교 항목 | 델 피에로 | 토티 |
|---|---|---|
| 소속 클럽 | 유벤투스 (19시즌) | AS 로마 (25시즌) |
| 세리에 A 우승 | 6회 | 1회 (2001) |
| 챔피언스리그 | 우승 1회 (1996) | 없음 |
| 월드컵 | 우승 (2006) | 우승 (2006) |
| 스타일 | 감아차기·프리킥·마무리 | 패스 비전·트레콰르티스타 |
| 발롱도르 최고 | 2위 (1998) | 상위권 진입 |
결론? 팀 성과와 유럽 무대 트로피에서는 델 피에로가 앞서고, 순수 창조성과 원클럽 상징성 면에서는 토티를 높게 보는 사람도 많아.
이런 논쟁이 재미있는 건, 둘 다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점이야. 은퇴 후 여러 자리에서 서로를 극찬했지.
12. 그가 남긴 것 — '충성'이라는 단어의 실체
요즘 축구에서 '레전드'라는 단어가 너무 싸게 쓰이잖아? 3년 잘하면 레전드, 트로피 하나 들면 아이콘.
델 피에로가 특별한 건 19년이라는 시간의 밀도야. 그 안에 영광, 부상, 추락, 강등, 부활, 그리고 마지막 우승이 다 들어 있어.
📌 델 피에로 커리어 타임라인 요약
1993 유벤투스 입단 → 1995 첫 스쿠데토 → 1996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8 발롱도르 2위 → 1998.11 십자인대 파열 → 1999~2001 침체기
2001 주장 선임 → 2002·2003 스쿠데토 → 2006 월드컵 우승
2006 세리에 B 잔류 → 2007 즉시 승격 → 2008 세리에 A 득점왕
2012 마지막 스쿠데토 & 작별 → 2015 은퇴
흥미로운 점은, 그가 유벤투스에 남았던 게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었다는 거야. 스페인, 잉글랜드 빅클럽들의 관심은 계속 있었어.
그런데 그는 매번 같은 선택을 했지. 검은색과 흰색.
데이터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
요즘은 xG, 프로그레시브 패스, PPDA 같은 지표로 선수를 평가하잖아. 델 피에로 전성기엔 그런 데이터가 거의 없었어.
그래서 숫자로만 보면 그의 위대함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705경기, 290골, 19년이라는 세 숫자는 어떤 고급 지표보다 강력해.
이런 식으로 스포츠 데이터를 시각화해서 이해하면 훨씬 재미있어지는데, 재능넷의 '지식인의 숲'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기록과 역사를 시각 자료로 풀어내는 콘텐츠들을 계속 만들고 있어. 축구 전술 분석이나 데이터 시각화에 관심 있다면 한 번 둘러봐도 좋아.
13. 자주 나오는 질문들 (Q&A)
Q. 델 피에로는 왜 발롱도르를 못 받았나요?
A. 1998년 2위가 최고 성적이었어. 그해 지단이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압도적이었지. 그리고 그해 11월 십자인대 파열로 커리어 최전성기가 꺾인 게 결정적이었어.
Q. 10번은 왜 영구결번이 안 됐나요?
A. 유벤투스는 델 피에로 본인의 뜻도 반영해 10번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어.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는 취지야. 참고로 유벤투스가 영구결번한 번호는 12번(서포터스 헌정)이야.
Q. 2006년에 남은 게 진짜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A. 그럼. 당시 그는 월드컵 우승 직후였고 만 31세였어. 유럽 어느 클럽이든 갈 수 있었지. 세리에 B 잔류는 커리어적으로는 명백한 손해였어. 그런데도 남았고, 21골로 팀을 승격시켰지.
Q. 오른발잡이인데 왼발 슛이 주무기라고요?
A. 맞아. 그는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썼고, 특히 좌측에서 안쪽으로 파고들며 때리는 왼발 감아차기가 시그니처였어. 프리킥도 상황에 따라 양발로 찼지.
Q. 유벤투스 최다 출장 기록은 깨질 수 있을까요?
A. 705경기는 한 클럽에서 대략 19시즌 동안 시즌당 37경기를 뛰어야 나오는 숫자야. 현대 축구의 이적 주기를 생각하면 극히 어려워.
마치며: 10번이라는 무게
축구에서 10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야. 팀의 상상력, 창조성,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번호지.
펠레, 마라도나, 플라티니, 바지오, 지단, 토티... 이 계보 안에서 델 피에로는 '충성'이라는 키워드로 자기 자리를 만든 사람이야.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적이 있고, 끝났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고, 2부리그에서 뛴 적도 있고, 서른셋에 득점왕이 된 적도 있어.
그 모든 굴곡을 같은 유니폼을 입고 통과했다는 것. 그게 델 피에로라는 이름이 지금도 토리노에서 울려 퍼지는 이유야.
"Fino alla fine." (끝까지)
유벤투스의 슬로건이자, 델 피에로의 커리어 그 자체.
다음에 유벤투스 경기를 볼 기회가 있으면, 왼쪽 측면 그 애매한 각도를 한번 유심히 봐봐.
거기가 바로, 델 피에로 존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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