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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ILITY · 자동차

스티어링 휠 — 왜 F1은 버튼투성이고 롤스로이스는 미니멀한가?

운전대는 '방향을 바꾸는 막대기'가 아니라, 그 차가 생각하는 방식이 손끝으로 튀어나온 인터페이스다.

0. 들어가며 : 손이 닿는 유일한 조종면

자동차에서 운전자가 가장 오래 만지고 있는 부품은 무엇일까.

시트? 시트는 만지는 게 아니라 얹혀 있는 것이다. 페달? 발이다. 정답은 스티어링 휠이다.
주행 중 두 손은 거의 항상 림(rim) 위에 있고, 조향·가감속 보조·변속·주행모드·인포테인먼트·통화·ADAS까지 전부 여기서 통제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F1 머신의 스티어링 휠은 버튼 20여 개, 로터리 스위치 6~8개, 패들 4장, LCD 1장이 붙은 휴대용 우주선 콘솔처럼 생겼다.
반면 롤스로이스 팬텀·고스트의 휠은 얇은 림, 커다란 원, 스포크 3개, 버튼 몇 개. 거의 1960년대 감성 그대로다.

같은 '자동차'인데 왜 이렇게 극단으로 갈릴까?
답은 취향이 아니라 공학적 제약 + 인간공학 + 브랜드 철학의 교집합에 있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것

· 스티어링 휠의 물리학(조향비, 조향각, 랙 앤 피니언, EPS)
· F1 휠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 규정·무게·장갑·0.1초
· 롤스로이스가 왜 버튼을 지우는지 — 감쇠, 정숙, 계급적 여유
· 이형(異形) 휠, 스티어 바이 와이어, 요크(yoke) 논쟁
· 에어백·열선·정전식 감지 등 숨은 기술
· 그리고 운전대의 미래

1. 기본기 : 운전대는 '회전 입력기'다

1-1. 조향비(Steering Ratio)라는 숨은 변수

운전대를 돌리면 바퀴가 돌아간다. 당연하다. 문제는 '얼마나'다.

조향비는 스티어링 휠 회전각 ÷ 앞바퀴 실제 조향각이다.
조향비 16:1이면, 휠을 16도 돌려야 바퀴가 1도 꺾인다.

차종대략적 조향비락투락(Lock-to-Lock)성격
대형 세단 / SUV15~18 : 12.8~3.2 회전안정적, 고속 직진성 우수
스포츠카11~14 : 12.0~2.5 회전즉답성, 손목 움직임 최소
F1약 6~9 : 1약 0.6~0.8 회전손을 떼지 않고 전 구간 주파
카트거의 1:1에 가까움1/4 회전 이하직결감 극단


여기서 F1 휠이 '원'이 아닌 첫 번째 이유가 나온다.

락투락이 1회전도 안 된다는 건, 드라이버가 손을 절대 옮겨 잡지 않는다는 뜻이다.
9시·3시 위치에 손을 고정한 채 좌우로 ±90~140도만 돌리면 모나코의 헤어핀까지 처리된다.

손을 옮겨 잡지 않는다 → 휠 상단/하단은 잡을 일이 없다 → 상하를 잘라내도 된다 → 무게가 줄고, 계기 시야가 트이고, 좁은 콕핏 진입이 쉬워진다.

반대로 일반 승용차는 주차할 때 휠을 2.5~3바퀴 돌린다. 손을 계속 옮겨 잡아야 한다.
그래서 원형이 아니면 곤란하다. 잡는 순간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이 나면 그게 곧 사고 위험이다.

조향비와 락투락 — 같은 코너, 다른 손목 대형 세단 16:1 락투락 약 3.0 회전 손을 자주 옮겨 잡음 스포츠카 12:1 락투락 약 2.2 회전 즉답성 중시 F1 약 7:1 락투락 1회전 미만 손을 아예 옮기지 않음 ※ 수치는 차종·세팅에 따라 달라지는 대표적 범위값

1-2. 랙 앤 피니언, 그리고 EPS의 시대

휠의 회전은 스티어링 칼럼을 타고 내려가 피니언 기어를 돌리고, 이 기어가 랙(수평 막대)을 좌우로 밀어 타이로드를 통해 앞바퀴를 꺾는다. 이것이 랙 앤 피니언 방식이고, 현대 승용차의 사실상 표준이다.

과거에는 유압(HPS)이 힘을 보탰다. 엔진 벨트로 펌프를 돌리고, 유압으로 랙을 밀어준다.
지금은 대부분 EPS(Electric Power Steering, 전동식 파워스티어링)다. 모터가 토크센서 신호를 읽고 보조 토크를 만든다.

EPS가 가져온 변화는 '가벼워졌다' 수준이 아니다.

① 조향감이 소프트웨어가 됐다.
컴포트/스포츠 모드로 핸들 무게가 달라지는 건 기계가 아니라 맵(map)이 바뀐 것이다.

② ADAS가 가능해졌다.
차로유지보조(LKA), 자동주차, 고속도로 주행보조는 전부 "모터가 스스로 휠을 돌릴 수 있어야" 성립한다.

③ 가변 조향비가 실용화됐다.
저속에선 조향비를 촘촘하게(적게 돌려도 많이 꺾임), 고속에선 느슨하게. BMW의 액티브 스티어링, 아우디 다이내믹 스티어링 등이 대표적이다.

"운전대의 무게는 이제 물리량이 아니라 '설정값'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운전대 위에 버튼을 얹을 이유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 F1 스티어링 휠 : 5,000만 원짜리 게임패드

2-1. 왜 이렇게 생겼나 — 4가지 강제 조건

(1) 콕핏이 좁다.
F1 모노코크는 드라이버가 누워서 들어가는 캡슐이다. 원형 휠은 물리적으로 탑승·탈출을 방해한다.
FIA는 사고 시 스티어링 휠을 떼어내고 7초 이내 탈출(그 후 휠을 다시 끼우는 시간 포함 규정)을 요구한다. 그래서 휠은 퀵 릴리즈 방식으로 탈부착된다.

(2) 무게가 곧 랩타임이다.
F1 휠은 카본파이버 셸에 실리콘 그립을 씌워 약 1.3~1.5kg 수준. 일반 승용차 휠(에어백 포함 3~4kg)보다 훨씬 가볍다.
원의 위아래를 잘라낸 것만으로도 관성모멘트가 줄어 조향 응답이 빨라진다.

(3) 손을 떼면 진다.
시속 300km에서 손을 떼고 센터콘솔 버튼을 누른다? 그 0.3초에 25m를 간다.
그래서 모든 조작이 휠 위로 올라왔다. 이건 사치가 아니라 안전 설계다.

(4) 장갑을 낀 손으로 눌러야 한다.
FIA 8856-2018 규격의 방염 글러브는 두껍다. 터치스크린은 오작동 위험이 크고, 4~6G 횡가속 상태에서 정밀 터치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F1은 물리 버튼 + 로터리 다이얼 + 촉각 구분(모양/색/높이 차이)을 고수한다.

2-2. 버튼 하나하나가 하는 일

컨트롤기능왜 휠에 있어야 하나
업/다운 시프트 패들시퀀셜 8단 변속코너 진입·탈출 중 상시 사용
클러치 패들(2개)스타트·피트 출발 때 반클러치바이트 포인트 제어, 두 손 모두 필요
DRS리어윙 개방, 항력 감소지정 구간 진입 즉시 눌러야 함
오버테이크 / 에너지 부스트ERS 디플로이 최대화추월 시도 순간에만 짧게
BB (Brake Balance)전/후 제동 배분 조정연료 감소·타이어 마모에 따라 랩마다 변경
Diff (디퍼렌셜)진입/중간/탈출 차동 제한 설정코너 특성별 실시간 조정
엔진 모드 / 스트랫(Strat)파워유닛 맵 전환퀄리파잉·연비주행·세이프티카 대응
PL (Pit Limiter)피트레인 속도 제한(통상 80km/h)위반 시 즉시 페널티
Radio / Drink무전, 음료 펌프레이스 2시간, 체중 2~4kg 감소 대응
Neutral / Reverse중립·후진스핀 후 복귀 시 필수


여기에 중앙 LCD가 랩타임, 델타, 기어, 연료 잔량, 타이어 온도, ERS 상태를 표시하고,
상단 시프트 라이트가 RPM에 따라 초록→빨강→파랑으로 번쩍인다. 타코미터 바늘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격 이야기
F1 스티어링 휠 한 개의 제작비는 팀·사양에 따라 수천만 원~1억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카본 셸, 방수·방열 커넥터, 드라이버 손 석고 본을 뜬 맞춤 그립, 항공우주급 스위치가 들어간다.
드라이버마다 그립 두께·패들 거리·버튼 배치가 전부 다르고, 팀 동료끼리도 호환되지 않는다.

F1 스티어링 휠 — 손을 떼지 않기 위한 설계 GEAR 6 1:18.442 ERS 74% FUEL 31.2 BB DIF STRAT MIX DRS OT PL RAD N R 브레이크 밸런스 디퍼렌셜 세팅 시프트 라이트 : RPM 시각화 뒷면에 시프트·클러치 패들 4장 ※ 배치는 팀·드라이버별로 전부 다름. 개념 설명용 도식.

2-3. 그래도 '원형 금지' 규정은 없다

흔한 오해 하나. "FIA가 F1 휠을 원형으로 못 만들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FIA 기술규정은 휠의 치수 한계, 탈착 시간, 시야 간섭, 안전 요건을 규정할 뿐, "원형 금지" 조항은 없다.
지금의 형상은 규제가 아니라 최적화의 결과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까지 F1 휠은 작은 원형이었고, 반도체 제어와 패들 시프트가 보편화되면서 지금 모습으로 진화했다.

반대로 일반 도로차량은 UN ECE R79(조향장치), FMVSS 203/204(운전자 충돌 보호) 등 규제를 받는다.
여기서 핵심은 "정상적인 조향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는 요건인데, 요크형 휠이 논란이 된 이유가 바로 이 대목이다.

3. 롤스로이스 : 버튼을 지우는 것도 기술이다

3-1. 큰 원, 얇은 림 — 의도된 '느림'

롤스로이스 스티어링 휠은 동급 독일 세단보다 지름이 크고 림이 얇다.
요즘 유행하는 D컷, 두툼한 그립, 납작한 하단… 전부 없다. 왜?

① 큰 지름 = 작은 토크로 큰 조향
지레의 원리다. 반지름이 커질수록 같은 힘으로 더 큰 토크를 만든다.
롤스로이스는 EPS 보조가 있어도, 손끝으로 스르륵 돌아가는 감각을 위해 물리적으로 큰 휠을 쓴다.

② 얇은 림 = '쥐지 않는다'
스포츠카의 두꺼운 그립은 움켜쥐라는 신호다. 롤스로이스의 얇은 림은 얹어 놓으라는 신호다.
브랜드 스스로 말하는 "waftability(파도 타듯 미끄러지는 주행감)"를 손에 번역한 것이다.

③ 느슨한 조향비
민첩함 대신 직진 안정성과 미세 입력 무시를 택한다.
노면 요철이 손에 튀어 올라오는 걸(kickback) 적극적으로 감쇠하고, 온센터 구간에는 일부러 여유를 둔다.
2.5톤 차체를 부드럽게 흘려보내려면 조향이 예민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카의 조향은 정보를 전달한다.
럭셔리 세단의 조향은 정보를 편집해서 전달한다.
전자는 "노면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후자는 "노면 같은 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3-2. 왜 버튼이 적은가 — 세 가지 이유

(1) 조작 주체가 다르다.
F1은 드라이버가 차량 세팅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엔지니어다.
롤스로이스 오너(특히 쇼퍼드리븐 모델)는 세팅을 바꿀 이유가 거의 없다. 차가 알아서 한다.
실제로 롤스로이스는 GPS로 앞 도로를 미리 읽어 변속기를 준비시키는 Satellite Aided Transmission, 카메라로 노면을 스캔해 서스펜션을 선제 조정하는 Flagbearer 같은 기술을 쓴다.
버튼이 없는 게 아니라, 버튼을 누를 일을 차가 없애버린 것이다.

(2) 인지 부하 관리.
럭셔리의 본질은 "생각할 일이 적음"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스위치 개수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 요인이다.
롤스로이스는 자주 쓰지 않는 기능을 로터리 컨트롤러(센터 콘솔)와 히든 패널로 내려보낸다.

(3) 소재와 촉감이 곧 UI.
버튼 수를 줄이면 남은 요소의 품질이 극단적으로 중요해진다.
스포크 마감의 이음매, 클락스프링 위의 유격, 회전할 때의 마찰 소리까지 튜닝 대상이 된다.
버튼 40개로 채운 휠에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들이다.

재미있는 사실
롤스로이스의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 로고나 RR 모노그램은 차가 어떤 자세에 있든 항상 수평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휠 캡(로터리 휠 센터)으로 유명하다.
스티어링 휠 중앙의 RR 엠블럼 역시 조향 각도와 무관하게 정위치를 유지한다.
기능적으로는 0의 가치, 브랜드적으로는 100의 가치. 이것이 럭셔리 엔지니어링의 문법이다.

두 개의 철학 : 정보 최대화 vs 정보 편집 F1 — 모든 것을 손안에 롤스로이스 — 아무것도 손에 남기지 않기 조작 지점 약 25개 반응시간 우선 · 촉각 구분 · 장갑 대응 사용자 = 훈련된 전문가 조작 지점 4~8개 인지 부하 최소화 · 촉감 품질 극대화 사용자 =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 개수는 세대·사양에 따라 변동. 철학 차이를 보여주는 개념도.

4. 스티어링 휠 안에 숨어 있는 부품들

겉에서 보면 그냥 둥근 링이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4-1. 에어백 모듈

휠 중앙의 커버는 장식이 아니라 파열선(tear seam)이 설계된 덮개다.
충돌 감지 후 약 20~30밀리초 이내에 인플레이터가 가스를 채워 쿠션을 전개한다.
그래서 휠 센터에는 부피를 차지하는 것을 마음대로 넣을 수 없고, 이게 디자인 자유도를 크게 제약한다.
반대로 F1 휠에는 에어백이 없다. HANS 디바이스와 6점식 벨트, 헤일로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4-2. 클락 스프링(Clock Spring)

휠은 좌우로 몇 바퀴씩 돌아가는데, 에어백·경적·버튼 전선은 어떻게 연결될까?
답이 클락 스프링이다. 납작한 플랫 케이블을 시계태엽처럼 감아둔 부품으로, 회전을 흡수하며 전기 연결을 유지한다.
정비 중 휠을 분리했다가 클락 스프링을 중립에서 어긋나게 조립하면 케이블이 끊어지고 에어백 경고등이 점등된다. 현장에서 흔한 실수다.

4-3. 핸즈온 감지(Hands-on Detection)

ADAS 시대의 필수품이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토크 센서 방식 : 운전자가 휠에 주는 미세 저항 토크를 측정. 저렴하지만, 무릎으로 받쳐도 속는 경우가 있다.
정전용량(capacitive) 방식 : 림 내부에 센서층을 넣어 손의 접촉을 직접 감지.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가 채택 중이며, 실내 카메라의 시선 추적과 결합해 신뢰도를 높인다.

4-4. 열선과 소재

열선 스티어링 휠은 림 아래 얇은 열선 필름이 들어간다.
가죽은 열전도율이 낮아 손이 덜 시리고, 알칸타라/스웨이드는 땀에 미끄러지지 않아 스포츠 주행용으로 선호된다.
반대로 알칸타라는 손때와 유분에 취약해 관리가 까다롭다. 데일리로 쓰는 차라면 나파 가죽이 현실적이다.

정비 팁 — 핸들 떨림의 원인 감별

· 고속(80~110km/h)에서 핸들만 떨림 → 앞바퀴 휠 밸런스 불량 가능성 높음
· 제동 시에만 떨림 → 브레이크 디스크 변형(DTV)
· 저속에서 좌우로 흐름 → 얼라인먼트(토/캠버), 타이어 편마모
· 직진 시 핸들 센터가 틀어짐 → 얼라인먼트 또는 사고 이력
· 주차 시 '드르륵' 소리 → EPS 모터/랙 부시 마모

5. 요크(Yoke)와 스티어 바이 와이어 — 미래는 정말 네모인가?

5-1. 요크 논쟁의 본질

테슬라 모델 S/X가 비행기 조종간 같은 요크형 휠을 내놓았을 때,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찬성 측 : 계기판 시야가 트인다, 미래적이다, 고속도로에선 불편하지 않다.
반대 측 : 주차·유턴처럼 크게 돌려야 할 때 잡을 곳이 없다, 급박한 회피 조향에서 손이 헛돈다.

기술적 핵심은 이것이다.
요크는 '조향비가 매우 촘촘할 때'만 합리적이다.
F1처럼 락투락이 1회전 미만이면 문제없다. 그런데 기존 승용차처럼 2.5~3회전을 돌려야 한다면, 위쪽이 잘린 휠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실제 시장의 흐름은 "요크 + 가변 조향비" 조합으로 수렴 중이다.

5-2. 스티어 바이 와이어(Steer-by-Wire)

이름 그대로 휠과 바퀴 사이의 기계적 연결(스티어링 칼럼)을 없애고, 전기 신호로만 조향하는 방식이다.
양산 사례로는 인피니티의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2013년 Q50, 초기엔 백업 클러치 존재), 그리고 렉서스 RZ 계열의 원모션 그립, 테슬라 사이버트럭 등이 거론된다.

장점

· 조향비를 속도·모드에 따라 자유롭게 설계 (저속 0.5회전 / 고속 느슨하게)
· 노면 충격이 손에 전달되지 않음 (킥백 완전 차단)
· 칼럼이 없어 실내 패키징·충돌 안전 설계 자유도 상승
· 좌핸들/우핸들 전환이 소프트웨어 문제로 축소

과제

· 페일세이프 : 전원·제어기·센서를 전부 이중화(redundancy)해야 한다. 한 계통이 죽어도 조향이 살아야 한다.
· 포스 피드백의 진정성 : 실제 노면 정보가 없으니, 모터가 '가짜 손맛'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어색하면 운전자는 즉시 불신한다.
· 법규 : UN ECE R79는 오랫동안 기계적 연결을 전제로 했고, 최근에야 자동 조향 기능 확대를 반영해 개정되어 왔다. 국가별 승인 편차가 남아 있다.

결국 스티어 바이 와이어의 승부처는 성능이 아니라 신뢰다.
브레이크는 페달 밟으면 선다는 믿음, 운전대는 돌리면 꺾인다는 믿음.
이 믿음을 코드로 재현하는 일이 남았다.

기계식 조향 vs 스티어 바이 와이어 A. 기계식 (랙 앤 피니언 + EPS) EPS 물리적으로 연결됨 → 노면 정보가 손까지 직접 전달 B. 스티어 바이 와이어 피드백 모터 제어기 (이중화) 조향 액추에이터 기계 연결 없음 → 조향비 자유, 대신 이중화와 가짜 손맛이 과제

6. 그 사이의 세계 — 장르별 스티어링 휠 문법

6-1. 슈퍼카 / 퍼포먼스 세단

페라리는 과감하게 모든 조작을 휠로 올린 브랜드다.
마넷티노(Manettino) 다이얼로 주행모드를, 휠 위 버튼으로 와이퍼·방향지시등·시동까지 처리한다.
"스티어링 칼럼에 레버를 달면 손을 옮겨야 하니, 그것조차 휠 위에 두자"는 F1식 논리의 직수입이다.
단점도 명확하다. 학습 곡선이 가파르고, 익숙해지기 전엔 방향지시등조차 헷갈린다.

BMW M, 메르세데스-AMG는 절충형이다. 주행모드 다이얼·M 버튼처럼 자주 쓰는 것만 휠에 올리고 나머지는 남긴다.

6-2. 상용차 / 버스 · 트럭

대형 상용차의 휠은 지름이 크고 각도가 눕는다.
지름이 큰 이유는 유압 고장 시에도 최소한의 조향력을 확보하기 위함이고, 눕는 이유는 운전 자세가 높고 장시간 주행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피너 노브(핸들 볼)를 다는 경우가 많은데, 한 손으로 빠르게 크게 돌려야 하는 상황이 잦아서다. 다만 승용차에서는 에어백 전개·손목 부상 위험 때문에 권장되지 않는다.

6-3. 랠리 / 드리프트

랠리카는 원형을 유지하되 작은 지름(280~330mm)을 쓴다.
빠른 카운터 스티어(역조향)를 위해 손을 크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요크는 최악의 선택이다.
드리프트 머신은 여기에 조향각 확대 킷을 더해 65도 이상 꺾이도록 만든다. 일반 승용차의 최대 조향각은 보통 35~40도 수준이다.

6-4. 시뮬레이터 / 심레이싱

요즘 다이렉트 드라이브(DD) 휠베이스는 8~25Nm 토크로 실제에 가까운 피드백을 만든다.
재미있는 건, 심레이싱 유저들이 실제 F1 휠 레플리카를 사서 쓰는 흐름이다.
버튼이 많은 이유를 이해한 사람일수록 버튼을 원한다. 조작이 손을 떠나지 않을 때의 쾌감을 알기 때문이다.

참고로 재능넷의 '지식인의 숲'에도 자동차 전장·시뮬레이터 세팅·3D 모델링 같은 주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활동 중인데, 스티어링 휠은 기계공학·인간공학·UI 디자인이 한 점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융합 주제로 자주 언급된다.

7. 인간공학 : 좋은 스티어링 휠의 조건

7-1. 9시-3시가 표준이 된 이유

과거 교습소에서는 '10시 10분'을 가르쳤다. 파워스티어링이 없던 시절, 높은 위치에서 체중을 실어 돌리기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 권장은 9시-3시(또는 8시-4시)다. 이유는 두 가지.

· 에어백이 전개될 때 팔이 얼굴로 튕기는 것을 막는다. 10시 10분 자세는 팔뚝 골절·안면 타격 위험이 있다.
· 좌우 대칭 입력이 쉬워 긴급 회피 조향의 정확도가 높다.

7-2. 텔레스코픽 & 틸트

휠 위치 조절은 편의가 아니라 안전이다.

· 가슴과 휠 중앙 사이 최소 25~30cm 확보 (에어백 전개 공간)
· 휠 상단을 잡았을 때 팔꿈치가 약간 굽는 정도
· 계기판이 휠 림에 가리지 않아야 함
· 무릎이 칼럼 하단에 닿지 않아야 함 (충돌 시 니 인저리)

7-3. 온센터 필(On-center Feel)

고속도로에서 차가 '똑바로 가는 느낌'을 만드는 것은 서스펜션만이 아니다.
조향 중립 부근에서 미세한 저항과 복원력이 어떻게 설계됐느냐가 결정한다.
너무 무르면 차가 떠다니고, 너무 예민하면 손이 피곤하다.
브랜드의 '조향 캐릭터'는 사실 이 온센터 구간 몇 도에서 90% 결정된다.

중고차 볼 때 스티어링으로 확인할 것

1. 평탄한 직선로에서 손을 살짝 놓았을 때 한쪽으로 쏠리는가
2. 핸들 센터 마크와 실제 직진이 일치하는가
3. 좌우 풀락 시 '끼익' 소리나 걸림이 있는가
4. 휠 가죽 마모 위치가 주행거리와 어울리는가 (주행거리 조작 단서)
5. 에어백 경고등이 켜졌다가 정상적으로 소등되는가

8. 정리 : 버튼의 수는 '누가 생각을 하느냐'의 문제

F1과 롤스로이스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질문에 대한 다른 답이다.

"운전 중 발생하는 판단과 조작의 총량을, 누가 얼마나 감당할 것인가?"

F1 : 드라이버가 전부 감당한다. 그러니 모든 스위치를 손안에 준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훈련된 20명 중 하나이고, 0.05초의 이득을 위해 버튼 25개를 외운다.

롤스로이스 : 오너는 아무것도 감당하지 않는다. 차가 감당한다.
그러니 버튼을 지운다. 지운 만큼 남은 것의 품질을 올린다.

그 사이에 우리가 타는 대부분의 차가 있다.
크루즈 컨트롤, 볼륨, 통화, 음성인식, 차로유지 — 딱 그만큼의 버튼이 붙어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 개수는 제조사가 추정한 '당신의 인지 여유'다.

앞으로는?

자율주행 레벨이 올라갈수록 스티어링 휠은 두 갈래로 갈라질 것이다.

① 사라지는 방향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에는 애초에 휠이 없다. 이미 일부 시제품은 운전석 자체를 없앴다.

② 더 정교해지는 방향
운전을 '즐기는 행위'로 남기려는 차는 오히려 스티어 바이 와이어와 고정밀 햅틱으로 노면보다 더 노면 같은 피드백을 만들어낼 것이다.
실제 진동이 아니라, 설계된 진동. 그게 더 좋게 느껴진다면 그것도 기술이다.

결국 운전대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자동차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선언문이다.
당신 차의 운전대를 한번 내려다보라.
거기 붙은 버튼의 개수와 배치가, 그 차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 말해준다.


한 줄 요약
F1 휠은 '손을 떼면 진다'는 물리학의 결론이고, 롤스로이스 휠은 '손을 쓰게 하지 않겠다'는 서비스의 결론이다.
둘 다 지극히 합리적이며, 그래서 자동차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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