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4.0 북한 AN-24와 Il-76, 고려항공이 지금도 하늘에 띄우는 소련제 기체의 기술적 실체와 운용 생태계

북한 AN-24와 Il-76, 고려항공이 지금도 하늘에 띄우는 소련제 기체의 기술적 실체와 운용 생태계
냉전의 금속이 21세기 활주로를 구르는 이유
항공사 프로파일소련 항공기술제재와 정비평양 순안, 시간이 두 겹으로 흐르는 활주로
세계 민항 시장은 놀랍도록 균질하다. 리스본이든 자카르타든, 보딩브리지 끝에서 우리를 맞는 것은 대개 보잉 737이거나 에어버스 A320이다. 엔진은 CFM56 아니면 LEAP, 조종석은 글래스 콕핏, 안내 방송의 억양만 다를 뿐 기계적 문법은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딱 한 군데, 이 균질함이 통째로 깨지는 활주로가 있다. 평양 순안국제공항(ICAO: ZKPY / IATA: FNJ)이다. 이곳에는 1960년대 소련 설계국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기체들이 주기(駐機)해 있다. 터보프롭 안토노프 An-24, 4발 대형 수송기 일류신 Il-76MD,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Tu-134·Tu-154·Il-62M·Il-18의 잔존 개체들.
항공 마니아들 사이에서 고려항공(Air Koryo, 편명 코드 JS / KOR)이 "살아 있는 항공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려는 건 감상적인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왜 이 기체들이 아직 날 수 있는가, 그 공학적·제도적 조건을 뜯어보는 쪽이 훨씬 흥미롭다.
이 글의 관점 — 드론/항공 카테고리 독자를 위해, 기체의 설계 철학·정비 체계·인증 제도·제재 환경이라는 네 축으로 접근한다. 정치적 평가는 배제하고 확인 가능한 항공 기술·운항 사실에 집중한다.
An-24 — "비포장 활주로에서도 뜨라"는 설계 명령서
1. 태어난 배경
An-24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안토노프 설계국(OKB-473)이 개발한 쌍발 터보프롭 여객기다. 초도 비행은 1959년 10월, 아에로플로트 정기 취항은 1962년. 목표는 명확했다. 소련 영토 곳곳에 흩어진 자갈·잔디·압설(눈 다짐) 활주로에서, 정비 인프라가 빈약한 지방 공항을 거점으로, Li-2와 Il-14 같은 피스톤 기체를 대체하는 것.
이 요구가 기체 형상 전체를 결정했다. 고익(high-wing) 배치로 프로펠러와 엔진 나셀을 지면에서 최대한 띄웠고, 랜딩기어는 저압 타이어를 채택해 접지압을 낮췄다. 동체 하부에 이물질이 튀어 오르는 것을 감안한 구조 보강도 들어갔다.
2. 핵심 제원
| 항목 | An-24 계열 개략값 |
|---|---|
| 엔진 | 이브첸코 AI-24 터보프롭 × 2 |
| 프로펠러 | AV-72 계열 4엽 가변피치 |
| 좌석 | 44~52석 (형식별 상이) |
| 순항속도 | 약 450~470 km/h |
| 항속거리 | 약 1,800~2,800 km (페이로드 조건별) |
| 최대이륙중량 | 약 21톤급 |
| 이륙 활주거리 | 약 600~850 m 수준 |
여기서 주목할 숫자는 맨 아래다. 이륙 활주거리 1km 미만. 현대 리저널 제트가 1,500~1,800m를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An-24는 사실상 "활주로 비슷한 것만 있으면 뜬다"는 범주에 들어간다. 북한처럼 지방 공항 포장 상태가 균일하지 않고, 산악 지형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환경에서 이 특성은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3. An-24RV의 '보조 제트' 트릭
고려항공이 보유한 개체 중에는 An-24RV 형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 형식의 특징은 우현 엔진 나셀 후방에 RU-19A-300 소형 터보제트를 내장한다는 점이다. 원래 목적은 두 가지다.
① 지상 시동 전원 — APU(보조동력장치) 역할로 발전기를 돌려 주 엔진 시동을 건다. 지상 지원 장비가 없는 오지 공항에서 자립 운항을 가능하게 한다.
② 이륙 추력 보조 — 고온·고표고(hot & high) 조건이나 한 발 정지(OEI) 상황에서 약 800~900 kgf급 추가 추력을 낸다. 안전 마진을 물리적으로 사 오는 장치다.
즉 An-24RV는 "터보프롭 2발 + 미니 제트 1발"이라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기묘하지만 당시 조건에서는 대단히 합리적인 하이브리드였다. 설계 철학이 인프라 부족을 기체 스스로 보상한다는 방향으로 일관되어 있다.
4. 북한에서의 역할
An-24는 고려항공의 국내선 및 단거리 전세편의 실질적 주력이다. 평양–삼지연, 평양–원산(갈마), 평양–어랑(청진), 평양–혜산 등 관광 시즌에 열리는 노선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어 왔다. 이 노선들은 공통점이 있다.
수요가 계절적이고 소규모이며, 활주로 인프라가 대형 제트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 100석짜리 제트를 30명 태우고 띄우는 것보다, 44석 터보프롭을 절반 채워 보내는 편이 연료·정비·활주로 부담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다. 기재 노후 = 비효율이라는 통념이, 이 특수한 수요 곡선 위에서는 그대로 성립하지 않는다.
Il-76 — 하늘을 나는 컨테이너 부두
1. 설계 개념
Il-76은 모스크바 일류신 설계국이 1971년 초도 비행시킨 4발 터보팬 수송기다. 요구 조건은 An-24와 본질적으로 같되 규모가 커졌다. "40톤 화물을 비포장·미정비 활주로에 내려놓아라."
그래서 나온 해법들이 하나같이 과격하다.
다륜(多輪) 랜딩기어 — 주 랜딩기어에 다수의 바퀴를 배치해 접지압을 분산시킨다. 총 타이어 수가 20개에 달한다. 콘크리트가 아닌 지면에서도 기체 중량이 땅을 파고들지 않게 하는 구조다.
타이어 공기압 가변 시스템 — 활주로 노면 상태에 따라 지상에서 타이어 압력을 조절할 수 있다. 군용 트럭의 CTIS와 같은 발상이 대형 항공기에 적용된 드문 사례다.
고양력 장치 — 대면적 슬랫과 3중 슬롯 플랩으로 저속 진입 성능을 확보했다. 덩치에 비해 착륙 속도가 낮다.
유리 노즈(navigator station) — 기수 하부에 항법사 전용 투명 캐노피. 정밀 지상 관측과 공중 투하를 위한 구성으로, 서방 수송기에서는 거의 사라진 배치다.
2. 제원 개요
| 항목 | Il-76MD 개략값 |
|---|---|
| 엔진 | 솔로비예프 D-30KP 터보팬 × 4 |
| 최대 페이로드 | 약 48톤급 |
| 최대이륙중량 | 약 190톤급 |
| 순항속도 | 약 750~800 km/h |
| 화물실 길이 | 약 20m (램프 제외) |
| 승무원 | 기장·부기장·항법사·항공기관사·통신사 등 5명 내외 |
승무원 구성을 보라. 5인 체제다. 오늘날 A350은 2명이 태평양을 건넌다. 이 차이는 단순한 낙후가 아니라 자동화를 사람으로 대체한 설계 선택의 결과다. 항법 컴퓨터와 위성항법을 신뢰할 수 없던 시대, 그리고 정비 지원이 없는 전개지에서 기계 상태를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했던 운용 환경이 만든 편성이다.
3. 고려항공의 Il-76 운용
고려항공은 Il-76MD 계열을 화물 전용으로 운용해 왔다. 여객기가 아니라 카고 플리트의 중추다. 등록기호는 P-9xx 대역이 알려져 있으며, 화물 수요 외에도 대형·중량 화물 수송, 특수 임무성 비행에 활용되는 것으로 관측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체가 민항과 군용의 경계에 있는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Il-76은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인도, 중국, 알제리 등에서 군 수송기로 쓰이는 동시에, 실크웨이·아빌론 같은 민간 화물사에서 초중량 화물 운송에 투입된다. 즉 고려항공이 이 기체를 가진다는 사실 자체는 국제적으로 특별히 이례적이지 않다. 이례적인 것은 그것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왜 아직도 날 수 있는가 — 감가상각이 아니라 '정비 사이클'의 문제
비행시간이 아니라 달력이 수명을 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 기체가 아직 난다고?"에서 놀란다. 그러나 항공기 수명은 제작 연도가 아니라 세 가지 카운터로 관리된다.
① FH(Flight Hours, 비행시간) — 엔진과 시스템 마모의 지표.
② FC(Flight Cycles, 이착륙 횟수) — 여압-감압 반복에 따른 동체 피로의 지표.
③ Calendar Time(경과 연수) — 부식·고무·실란트 열화의 지표.
서방 기체는 통상 "On-Condition" 정비, 즉 상태 기반으로 부품을 교체하며 사실상 무기한 운용이 가능하다. 반면 소련 계열 기체는 전통적으로 "지정 수명(ресурс) + 정기 오버홀" 방식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무조건 공장에 보내 분해·재조립하고, 제작사가 서비스 불레틴으로 수명을 연장(продление ресурса)해 주면 다시 날 수 있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가 나온다. 고려항공 An-24의 실제 연간 비행시간은 매우 적다. 국내선 계절 운항 중심이므로 서방 저비용항공사 기체가 하루 10~12시간을 소화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즉 달력상 50년이 지났어도 FH·FC 누적은 훨씬 적은 상태일 수 있다. 낮은 가동률이 역설적으로 기체 장수의 조건이 된 셈이다.
부품은 어디서 오는가
제재 환경에서 신품 부품 조달이 제한되는 만큼, 현실적으로 세 가지 경로가 거론된다.
동종기 해체 활용(Cannibalization) — 퇴역·계류 중인 동일 형식 기체에서 부품을 떼어 가동기에 투입. An-24/An-26/An-30 계열은 부품 호환성이 높아 이 전략이 특히 유효하다.
현지 제작 및 재생 — 구조 부재, 배관, 단순 기계 부품은 자체 가공이 가능하다. 소련 설계의 미덕은 정밀 전자보다 견고한 기계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제3국 경유 조달 — 여전히 An-24 계열을 다수 운용하는 지역이 존재하므로 중고 부품 시장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결국 An-24와 Il-76의 생존 비결은 "고치기 쉬운 기계"라는 점으로 수렴한다. 기계식 조종 계통, 아날로그 계기, 여유 있는 구조 설계. 오늘날의 FADEC 엔진과 통합 모듈 항전 장비는 제작사의 소프트웨어 지원 없이는 한 발도 못 움직이지만, D-30KP와 AI-24는 스패너와 토크렌치의 세계에 속한다.
"낡은 기술은 종속을 만들지 않는다." — 자립 운용 환경에서 구세대 기체가 선택받는 구조적 이유.
EU 운항금지 목록과 Tu-204라는 예외
고려항공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EU Air Safety List, 즉 유럽연합 역내 운항금지 항공사 목록이다. 고려항공은 2006년부터 이 목록에 등재되어 왔다.
그런데 여기에는 항공 팬들이 좋아하는 디테일이 하나 있다. 2010년 EU는 고려항공 전체를 금지하되, Tu-204 2기에 한해 조건부 운항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목록을 조정한 바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해당 기체가 EUROCONTROL·ICAO가 요구하는 현대적 항전 장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이 문제였다.
| 요건 | 내용 | 구세대 소련기 대응 |
|---|---|---|
| EGPWS / TAWS | 지형 충돌 경보 | 미장착 다수 |
| TCAS II | 공중충돌 방지 | 개조 필요 |
| RVSM | 수직분리 축소 공역 운항 | 고도계 정밀도 미달 |
| 8.33 kHz 무선 | 유럽 채널 간격 | 개조 필요 |
| B-RNAV | 지역 항법 정확도 | 항법사 의존 방식 |
즉 An-24나 Il-76이 유럽에 못 가는 이유는 "낡아서 위험하다"는 막연한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공역 진입 요건이라는 명확한 기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반대로 말하면, 이 기체들이 운항하는 공역 — 북한 영공, 중국 일부 노선, 러시아 극동 — 에서는 그 요건 자체가 완화되거나 다른 절차로 대체된다.
항공 안전 규제의 본질 — 규제는 기체의 나이를 재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역에서 요구되는 성능(Performance-Based)을 재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드론 운용 규제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 논리다. BVLOS 비행 허가가 기체 가격이 아니라 C2 링크 신뢰성·충돌회피 성능으로 결정되듯이.
국제선 네트워크의 축소와 잔존 노선
고려항공의 국제선은 지난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다. 한때 방콕, 쿠알라룸푸르, 마카오, 쿠웨이트, 블라디보스토크, 선양, 상하이 등으로 뻗었지만, 제재 강화와 수요 감소, 그리고 2020년 국경 봉쇄를 거치며 사실상 베이징·선양·블라디보스토크 축으로 좁혀졌다.
2023년 이후 일부 국제선이 단계적으로 재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투입된 기재는 주로 Tu-204-100B였다. An-24는 여전히 국내선과 전세편의 영역에 머문다. 이 분담 구조는 매우 합리적이다.
국제선 = 외국 공역 진입 = 항전 요건 필요 → Tu-204
국내선 = 단거리·소규모·활주로 다양 → An-24
화물·특수 = 중량·비정형 → Il-76
기단(fleet)을 단일 기종으로 통일해 비용을 줄이는 현대 항공사의 상식과 정반대지만, 조달 선택권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각 기체가 가진 물리적 강점에 임무를 정확히 배분하는 것이 유일한 최적화다. 이는 항공 운영 연구(Fleet Assignment Problem)의 교과서적 사례이기도 하다.
항공 마니아 문화와 '아비에이션 투어리즘'
2010년대 중반, 유럽과 동남아의 항공 동호인들 사이에서 "Air Koryo Aviation Tour"라는 독특한 상품이 유행한 적이 있다. 며칠간 평양에 체류하며 An-24, Il-18, Il-62M, Tu-134, Tu-154 등을 연달아 탑승하는 일정이었다. 어떤 회차에는 이미 정기 운항에서 물러난 기체를 특별히 띄우기도 했다.
이들이 돈을 내고 사는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기계적 경험이었다. Il-18 터보프롭 4발의 저주파 진동, Tu-134 기수의 유리 항법석에서 보이는 지평선, An-24 객실에서 프로펠러 동기(synchrophasing)가 맞아 들어가는 순간의 소리 변화. 이런 감각은 현대 제트기에서는 구조적으로 재현할 수 없다.
항공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산업유산(industrial heritage) 관광의 한 갈래다. 영국의 증기기관차 보존 철도, 미국의 워버드 에어쇼와 같은 계보에 놓인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존된 기체가 박물관 소속이지만, 여기서는 여전히 현역 운송사업자의 영업용 자산이라는 것이다.
기술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 입장에서 이 대비는 늘 흥미롭다. 실제로 항공·드론 분야 지식 콘텐츠를 다루는 재능넷의 '지식인의 숲'에서도, 최신 eVTOL 기술 못지않게 이런 구세대 플랫폼의 설계 논리가 꾸준히 관심을 받는다. 오래된 기계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제약 조건 아래에서 엔지니어가 내린 판단을 복기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안전성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An-24는 사고율이 높은 기종"이라는 서술을 자주 본다. 통계적으로 An-24 계열의 전손(hull loss) 사고 건수는 확실히 많다. 그러나 이 숫자를 읽을 때는 세 가지 보정이 필요하다.
① 생산 대수 — An-24 계열은 파생형 포함 수천 대가 제작되었다. 모수가 크면 절대 사고 건수도 커진다.
② 운용 환경 — 이 기체가 투입된 공항은 대체로 시베리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의 저정비·악기상 환경이었다. 기체 결함이 아니라 환경 위험이 통계에 섞여 있다.
③ 시대 — 사고의 상당수가 EGPWS·TCAS·CRM 개념이 정착되기 이전 시기에 발생했다. 오늘날의 안전 기준으로 1970~80년대 사고율을 비교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부당하다.
참고로 고려항공은 1983년 기니 코나크리 인근에서 Il-62M 사고로 다수 사망자를 낸 이후, 공개적으로 확인된 치명적 여객기 사고 기록이 장기간 없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낮은 운항 빈도와 제한된 노선망이 노출을 줄이는 요인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결론적으로 "구식 = 위험"은 게으른 등식이다. 위험은 기체 연식이 아니라 정비 품질 × 승무원 훈련 × 운항 환경 × 안전 문화의 곱으로 결정된다. 외부에서 이 네 변수를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 고려항공 평가의 진짜 난점이다.
드론 시대에 An-24를 다시 보는 이유
이 글이 '드론/항공' 카테고리에 놓인 데는 이유가 있다. 오늘날 무인기 설계자들이 마주하는 문제가, 놀랍게도 1959년 안토노프 설계국의 문제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짧은 활주로, 그리고 인프라 없는 운용
군용·재난 대응 무인기의 핵심 요구는 "준비된 활주로 없이 뜨고 내린다"이다. STOL 성능, 저압 타이어, 고익 배치, 견고한 랜딩기어 — An-24가 60년 전 채택한 해법이 오늘날 중대형 고정익 드론 설계서에 그대로 등장한다.
정비성이 곧 가용성
현장 정비가 가능한 모듈 구성, 특수 공구 최소화, 부품 공용화. 드론 운용사가 기체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따지는 MTBF와 현장 수리 가능성은 소련 수송기 설계 원칙과 정확히 같은 언어다.
Il-76의 후계는 무인 화물기일까
Il-76의 진짜 미덕은 "포장되지 않은 지면에 48톤을 내려놓는다"였다. 현재 개발 중인 대형 무인 화물기와 하이브리드 VTOL 카고 플랫폼들은 이 미션을 활주로 없이 수행하려 한다. 즉 문제 정의는 계승되고, 해법만 교체되는 중이다.
정리 — 박물관이 아니라 '작동 중인 제약의 기록'
고려항공의 An-24와 Il-76을 두고 "시간이 멈춘 곳"이라 부르는 건 절반만 맞다.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다른 제약 함수 위에서 최적화가 진행된 것이다.
자본 접근이 제한되고, 신기재 도입이 차단되고, 부품 공급망이 끊긴 조건에서 항공 운송을 유지하려면 답은 하나다. 고칠 수 있는 기계를, 적게 날리며, 임무에 정확히 맞춰 쓴다. An-24의 짧은 이륙 거리와 Il-76의 노면 무차별성은 그 조건 아래에서 여전히 유효한 성능값이다.
항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체들에서 세 가지를 읽어낼 수 있다.
첫째, 설계는 시대의 제약을 화석처럼 품는다. 유리 노즈 항법석 하나에 위성항법 이전 시대 전체가 담겨 있다.
둘째, 규제는 나이가 아니라 성능을 잰다. EU 목록의 Tu-204 예외가 그것을 증명한다.
셋째, 단순함은 자율성의 다른 이름이다. 이는 드론 시대의 설계자에게도 유효한 교훈이다.
언젠가 이 기체들도 마지막 착륙을 할 것이다. D-30KP의 배기음과 AI-24 프로펠러의 저역 진동이 사라지는 날, 우리는 20세기 항공 공학의 한 문법이 통째로 종료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때까지, 순안의 활주로는 항공사(史)를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가장 특이한 스피커로 남을 것이다.
덧붙임 — 본문의 제원은 공개 자료 기준 개략값이며, 형식·개조 이력·적재 조건에 따라 편차가 있다. 특정 기체의 정확한 성능은 해당 기체의 비행교범(AFM)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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